조각글

우울

652자

쉽게 넘어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넘어설 수 없어.

 

힘들이지 않고 이겨내리라 생각했다.

이겨낼 수 없어.

 

언제나처럼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버틸 수 없어.

 

지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너무 지쳤어.

 

고작 그까짓 것, 이라 생각했다.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멍청이.

 

결코 내가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패배자야.

 

어둠 속에 몸을 던지지 않으리라 믿었다.

이미 어둠 속에 갇혔으니.

 

어둠이 있다면 빛이 있으리라 믿었다.

빛이 있는 곳 어둠이 있으나, 어둠 있는 곳 빛이 없으리.

 

누군가 구원해 줄 것이라 믿었다.

늪에 빠진 것은 다시는 바깥을 볼 수 없어.

 

구원이 존재치 않으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나를 구원할 자는, 그 어디에도 없어.

 

이곳이 동굴이라면, 출구가 있으리라 희망했다.

그저 공허히 목소리만이 울릴 뿐.

 

바다라면, 다시 떠오르리라 희망했다.

그저 무겁게 가라앉을 뿐.

 

꿈이었다면, 하고 희망했다.

지독한 현실의 굴레에 더욱 갇힐 뿐.

 

이 모든 것이 나에게 다가오라고는 희망하지 않았다.

나의 희망은, 짓밟히기 위해 존재해.

 

날개가 꺾일 리 없다고 했다.

산산조각이 나, 더 이상 날 수 없어.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 했다.

가시밭길이잖아.

 

추락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이미 밑바닥에 있으니까.

 

아프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저 무뎌져 느끼지 못할 뿐.

 

이렇게 무너져내리리라고는 하지 않았다.

차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