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삶을 사는 회귀자이자 빙의자
오늘 꿨던 꿈: 세 번의 삶을 살며 세계를 구하는 꿈
- 키워드: 회귀, 빙의, 판타지, 신분제, 마법
나는 벌써 세 번째 삶을 사는 회귀자이자 빙의자였음. 첫 번째 삶에선 하찮은 인간으로 삶을 마감했고, 회귀하고 시작한 두 번째 삶에선 의도치 않게 천신으로부터 세계를 구한 영웅이 되었으며, 예상치 못하게 빙의해버린 세 번째 삶에선 영웅의 환생으로 추앙받게 되는 이야기임.
첫 번째 삶, 나는 평범한 평민 여성으로 살고 있었음. 마법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귀족 나으리나 배우는 것이고, 평민인 나는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음. 그렇게 죽지 못해 사는 날이 반복되던 어느 날, 천신들이 인간계를 습격해 옴. '균형을 맞춰야 한다'라는, 인간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며 모든 것을 파괴하기 시작함.
신전에선 그들을 섬기고 있었으니 받아들여야만 한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으나, 대중은 천신에게 맞서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함. 왕실은 대중을 적극 지원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몇 개의 마법 부대가 신설됨. 그 중 한 부대의 대장이 바로 '그 세계의 여주인공'에 해당하는 인간이었음.
그 주인공은 천신에게 대항했고, 끝내 천신에게 잡혀감.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음. 천신이 강림하던 날부터,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천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음.
나는 그 능력을 철저하게 숨겼음. 그도 그럴 게, 잡혀간 여주인공과 천신들이 그렇고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리고, 또 어떻게 증명하겠음. 천신에게 맞서다 납치된 주인공을 영웅으로 추대하고 구출해야 한다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했다가는 당장 죽임을 당해도 모자랐음.
그렇게... 나는 그저 무능하고 평범한 평민으로서 살기 위해 애썼고, 정말 평범한 죽음을 맞이했음. 천신도 아닌, 천신이 부리는 괴물이 던진 돌의 파편의 맞아서 죽어버림.
그리고 다섯 살의 내 몸에서 깨어남.
처음에는 굉장히 어리둥절했음. 그 모든 게 꿈이었던가, 하고. 그러나 시험삼아 사용해 본, 천신들이 여주인공을 위해 만들어준 '5살 인간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시전된 이후, 내가 과거로 돌아왔음을 깨달음.
왜 하필 내가 시간을 되돌아온 것인지, 다른 이들도 돌아온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많았음.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첫 번째 삶과 같은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분명했음. 그런 허망한 죽음이라니. 마지막 순간 생겨난, 갈 곳 없는 분노를 잊을 수가 없었음.
그래서 난 천신들의 마법을 훔치기로 결심함. 내가 '특별한 능력'으로 엿보았던, 여주인공을 위해 만들어진 그 수많은 마법들을.
그 마법들은 인간계에 알려지지 않은 마법이었을 뿐더러, 인간이 마법을 사용하는 법과는 그 근원부터 달랐음. 철저히 계산하고 서술하여 오차 하나도 생기지 않았을 때에야 비로소 발동되는 마법이 아니었고, 그저 직감과 본능, 의지에 의해 발동되는 마법이었음. 마치 천신이 숨 쉬듯 마법을 사용하는 것처럼.
그렇게 십 년을 훈련에 집중했음. 평민임에도, 여성임에도.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일만 하며, 남은 모든 시간에는 마법을 더 쉽고 빠르게 사용하기 위해 노력했음. 계속 반복하다 보니 그 마법들의 묘리를 이해하게 되었고, 인간계의 마법을 공부하여 '천신의 마법'처럼 바꾸고 싶어졌음.
마법을 배우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카데미에 가는 것이었지만, 나에게는 돈이 없었음. 아카데미는 겉으로나마 평등한 학생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었지만, 평민이 입학하기에는 너무나 막대한 자본이 필요했음. 뒷배도 없는 나에게 있어 입학은 불가능한 일이었음.
그래서 난 군에 입대하기로 결심함. 당장에는 전쟁을 위한 군이 아니고, 그저 귀족 나으리들의 명예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마법 같은 '마이너한 분야'의 자료를 얻기 수월할 거라 생각했음.
어떤 군에 지원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알고보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곳은 하나뿐이었음. 귀족이 그 스스로는 지원하지 않고, 회피하려 애쓰지만, 동시에 무시하기 어려운 두려움의 대상. 왕실마저 함부로 다루지 않는 그곳. 바로 '깨어진 독수리 부대'였음.
왜 그냥 독수리도 아니고 '깨어진 독수리'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음. 시적인 은유를 많이 사용하는 귀족 나으리들의 취향이겠거니, 하고 넘겼으나...... 그래서는 안 됐음... 독수리가 깨진 이유가 있었는데 그걸 몰랐음......
그곳이 악명 높은 이유는 지원자 대다수가 죽어버리는 시험이 첫 번째였음. 인간이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정교한 환상이 인간을 죽이고, 또 죽이는 시험. 명예를 위해 자원한 귀족은 모두 죽었으며, 첩자짓을 위해 심겨진 평민 역시 부대에 들어가기도 전에 모두 죽었음. 시험에 합격하여 부대에 들어간 사람은 모두 인간이 아닐 것이라는 괴소문마저 돌 정도로 어려운 난이도였음.
나는 그걸 지원한 뒤에야 알게 되었으나, 이제 와서 취소할 수는 없었음. 다른 부대라면 모를까, 그 부대에 지원한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시험에 응해야 했기 때문임. 시험 이전에 죽었다면 귀신이 되어서라도 시험에 응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음.
나는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로 시험장에 들어감. 허망한 죽음을 피하려고 했더니, 이젠 천신이 오기도 전에 죽을 위기였음. 이 믿기지 않는 현실에 믿지도 않는 신을 찾고 싶어졌음.
그러나 의외로 나에게 있어 시험은 그렇게까지 어려운 난이도는 아니었음. 온갖 흉측한 것들이 나타나 인간을 잔혹하게 학살하는 것? 그건 이미 첫 번째 생에서 수도없이 본 것이었음. 식량도 없는 상황에서 괴물을 피해 돌아다니는 것? 그것도 이미 첫 번째 생에서 익숙하게 하던 일이었음.
결국 나에게 어렵게 느껴질 만한 일은 괴물을 직접 잡는 것뿐이었는데... 그것도 천신의 마법이 있었으니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음. 별다른 계산 없이 바로 강력한 마법을 시전할 수 있었으니까.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기엔 쉽게만 느껴지는 시험이었음. 천신의 습격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저 일상에 가까운 수준의 시험이었음.
그러니까 그건... 마치 천신의 습격에 능숙해지라고 만든 시험 같았음. 이미 천신의 습격을 경험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알려주는 배움터였음. ...다소 불친절해서 그렇지.
어쨌거나 난 시험에 합격했고, 군인 다섯 명의 환대를 받게 됨. "이렇게 수월하게 통과하다니, 너도 만만치 않은 또라이구나?"라는 말은 덤이었음...
그 부대에 들어간 뒤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 부대는 겨우 다섯 명으로 이뤄져 있었고, 왕실로부터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태였음. 왕실에 찾아가면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라는 느낌으로 자원을 던져주는 느낌이라 해야 할까. 귀족 사회에선 그냥 '또라이를 격리해둔 집단'쯤으로 여겨지는 것 같았음.
대체 어떻게 부대가 유지되는 것인지 궁금했는데, 부대 인원이 모두 천재적인 능력을 가져서 가능한 거였음. 능력 없는 또라이라면 적당히 무시하기라도 할 텐데, 하나하나가 능력이 뛰어난 또라이라 사회에 풀어놓을 수가 없어서 가능한 일이었음......
그런데 그런 또라이 집단에 덜컥 들어와버린 평민 여성이라니. 왕실과 귀족 사회가 모두 뒤집어질 일이었음. 부대원들은 그것도 재밌을 것 같다고 말하긴 했지만, 나는 군에서의 '평민 여성'이 어떤 취급을 받을지 알고 있었음. 그걸 알면서도 신분을 숨길 수 없어 평민 여성으로 지원한 것이었는데... 이 집단은 내가 남장하는 것도 환영해주는 개차반 집단이었음...
"걔네가 무서워하던 게 알고보니 제일 무시하던 계층이라는 게 밝혀지면 재밌지 않을까? 아, 물론 신분을 밝히라는 건 아니고.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네 신분은 우리만 알고 있을게. ...하지만 역시 우습네, 걔네가 널 보고 조아릴 생각을 하면!“
아무래도 그들은 귀족 사회에서 퇴출된 존재라 그런지, 귀족 사회에 대한 분노와 허탈함이 강해 보였음. 모두가 귀족 출신인 건 아니었지만, 어떤 식으로든 상류층과 엮여 못 볼 꼴을 본 사람들이었거든.
그들은 귀족들에게 복수할 생각은 딱히 없었지만, 기회가 된다면 놀려먹을 생각은 가득했음. 그래서 더더욱 나의 남장과 나의 성장을 반기며 지원해준 것 같음. '무럭무럭 자라서 귀족들에게 엿을 먹이자~' 같은 느낌...?
그렇게 그들로부터 온갖 마법 서적을 제공받고, 인간의 마법을 천신의 마법처럼 변형하다보니, 왕국에서 굉장히 유명한 존재가 되었음. 마법의 창시자이자 최초의 대마법사라나 뭐라나. 나는 그저 천신의 마법을 훔쳐왔을 뿐인데 말임.
어쨌든 내 언행은 왕실과 귀족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평민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했음. 상류층에겐 '이용해먹을 수 있을까' 고민되는 존재로, 평민에겐 '우리 대신 성공해서 평민에게도 가능성이 있음을 증명하는' 존재로.
그런 것에 굉장히 부담을 느꼈지만, 부대원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꾸게 됨.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 위치라면 어지간한 건 이뤄낼 수 있을걸. ...그러니까 우리의 대장이 되는 거야!" ...지금 생각하면 그냥 일거리를 떠넘기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어쨌든 그 말이 나에게 기회가 되었음은 틀림없었음.
나는 깨어진 독수리 부대의 대장이 되었고, 상류층을 적당히 응대하며 천신의 습격에 대비하기 시작함. 부대원들은 '이거 우리 시험이랑 똑같네?'라며 의심을 말하는 한편, 뭐가 됐든 재밌어 보이니 그대로 따라주었음. 나와 어느정도 신뢰가 쌓이기도 했고 말이야.
그렇게 결전의 날, 첫 번째 생과 동일한 방식으로 천신이 습격해 왔고, 사상자가 거의 없이 막아낼 수 있었음. 그 때문에 평민들은 나를 영웅이라 불렀지만, 상류층 입장에선 굉장히 아니꼬워 보였나 봄. 무언가 판을 짜더라고.
원래라면 천신에게 대항할 수단으로 생겼어야 할 마법부대는 나를 견제할 목적으로 키워졌는데... 상당히 우스운 일이었음. 걔네가 배우는 마법이 누구로부터 왔다고 생각하는 거임? 인간의 마법이건, 내가 변형한 마법이건, 전부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들이었음. 그들이 완전히 새로운 마법들 만들어내지 않는 이상, 그들의 마법은 내가 이용할 수 있는 것에 불과했음.
굉장히 우스워서 그들의 견제는 죄다 무시한 채로 천신의 습격에만 대응하길 반복했음. 그들이 열받건 말건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었음. 나는 내가 살고, 내 부대원들이 살면 그만이었음.
별 같잖은 견제에 무시로 일관하던 어느 날, 곧 여주인공이 납치되던 때라는 것을 깨달은 어느 날. 나는 주인공에게 향했음. 역사가 다소 바뀌었다고는 하나, 천신들이 주인공에게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여전했거든. 인간을 위하는 고운 마음씨, 자신들에게 겁내지 않고 바락바락 대드는 태도, 약간의 마법 실력 등. 천신에게 납치될 것을 주의하라고 전달하려 했음.
...설마 내가 납치될 줄은 모르는 채로 말이야.
주인공에게 주의를 준 뒤, 다시 부대로 복귀하려던 때. 갑자기 천신들이 습격해 옴. 괴물이 아니라 본인들이 직접 강림한 거임. 당연히 모든 부대가 비상에 걸렸고, 나는 서둘러 부대원들에게 향했음. 여주인공의 안위는 내 알 바가 아니었음. 주의하라고 알려줬으니까, 미래를 아는 자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음. 이제 부대원들만 지키면 됐는데...
아니, 천신들이 왜 나에게 관심을 갖느냔 말이야. 낌새가 이상해서 열심히 숨어다니며 부대원들을 찾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와서는 "까꿍~" 하며 나를 납치하는 천신이라니 진짜 이상하잖아.
난 아직도 기억한다. 내 입을 틀어막고 내가 쓰는 마법을 전부 파훼한 뒤 나를 기절시켜버린 주황색 머리. 심지어 이놈은 나를 납치해간 뒤에도 이상한 짓만 했다고. 나한테 살아있는 꿀벌이 가득 들어간 수플레 팬케이크를 먹였다고. 진짜 인간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볼 때보다 더 충격받아서, 독이 아니라 정신적 충격으로 기절했음.
아무튼... 납치된 뒤로는 정말 이상한 일들만 당함... 분명 여주인공과는 그렇고 그런 방향으로 19금을 찍어대던 놈들인데, 나는 그냥 사육하는 실험체마냥 굴리더라...... 아니 꿀벌 수플레 팬케이크를 왜 먹이냐고.
그 뒤로 다른 천신들에게 혼난 건지, 주황색 머리의 장난이 좀 줄어들긴 했지만... 나는 아직도 잊지 못했다 그 꿀벌 수플레 팬케이크......
여차저차 해서 천신들의 장난에도 익숙해지고, 장난에 당하지 않고 회피하는 능력이 길러질 무렵이었음. 다른 세계의 천신이 등장해서 천신들이 왜 인간계를 파괴하려 했는지를 알려주더라.
그는 거대한 나무가 이 세계를 움켜쥐고 있는 걸 보여줬음. 내가 보기엔 그저 어린왕자의 바오밥나무였는데, 그게 무려 세계수라 하더라... 아무리 봐도 뿌리째 뽑아야 할 나무 같은데 지켜야 하는 나무래...... 대체 왜...?
암튼 그는 그 나무에게 양분을 줘야만 세계의 균형이 맞춰진다고 설명하며, 이번에는 이 인간계의 차례라고 했음. 인간계를 최대한 잘게 부숴서 나무에 양분을 줘야 한다나 뭐라나.
그가 뭐라 하든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하나뿐이었음. 내 부대원들은 살아있나?...라는 생각.
납치된 순간부터 계속, 계속 부대원들을 생각하며 걱정했음. 인간계가 계속 부숴지고 있다는 건 알겠는데, 내 부대원들도 죽어버렸을까? 내 소중한 동료들이 죽어버렸을까? 더이상 만나지 못하면 어쩌지?
그날, 나는 천신들과 싸웠음. 일방적으로 싸움을 건 것에 가깝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그들에게 통보했음. "만약 내 부대원들 중 하나라도 죽었다면, 내 모든 걸 걸고 너흴 고통스럽게 만들 거"라고.
그들은 아직 내 부대원을 죽인 기억이 없다고 했지만, 내가 그들을 어떻게 믿겠음? 애초에 그들이 내 부대원이 누구인지 알기는 할까?
의심에 가득찬 채로 천신들의 말과 행동, 심지어는 장난까지도 모두 무시로 일관했음.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음. 그러자 그들은 나에게 인간계를 비추는 수경을 가져다 줬음. 직접 부대원들을 찾아보라는 듯. 그리고 다시 본인들과 어울려달라는 듯.
나는 먼저 부대원들의 안위를 살폈음. 다행히 모두가 무사했지만, 안색은 처참했음. 모두가 나를 구해야 한다며 소리치고 있었고, 천계로 향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음. 인간계가 부숴지든 말든 신경쓰지 않으며, 오직 나만을 찾았음.
통제불능이 된 그들을 사형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생길 무렵,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음.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곳에서 탈출해 부대원들을 만나야만 했음.
그렇게 천계에서 인간계로 향하는 마법을 개발하고 시험해 보았는데... 아뿔싸. 무의식중에 '인간계로의 이동'이 아니라 '천신들로부터의 탈출'까지 생각해버린 거임.
술식이 잘못된 건 아니었음. 수경을 토대로 역산하여 만든 식이었기에 잘못될 리는 없었음. 수많은 술식을 변형한 대마법사로서, 그 정도는 확신할 수 있었음. 잘못된 건 내 무의식 하나였음...
나는... 결과적으로 인간계로 이동하긴 했음. 내 육체를 두고 와서 그렇지.
내 육체는 천계에 남고, 내 영혼만이 인간계로 이동해버렸음. 그리고 어느 귀족 영애의 육신에 들어가버림. 빙의로 인해 강제로 세 번째 삶이 시작된 거임.
내 육체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음. 천신들이 어딘가에 잘 보관해두지 않았을까 싶긴 한데, 인간 기준에서 잘 보관했을지는 확실치 않음...
어쨌든 나는 다시 내 육체로 돌아갈 방법을 몰랐고, 이 귀족 영애의 삶에 익숙해져야만 했는데... 정말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영애도 군에 지원서를 쓰고 있었음. 여주인공이 있는 마법 부대에 지원하려 한 것 같던데, 그걸 슬쩍 바꿔서 내 부대에 지원해버림. 종류는 다르지만 둘 다 군이긴 하니까 된 거 아닐까?
문제가 있었다면, 이 영애의 마법 실력이 굉장히 처참했다는 것뿐임. 내 육체로 낼 수 있는 실력의 반의 반의 반 정도라 해야 하나... 천신의 마법으로 변형한 것을 또 다시 변형해야만, 원래 수준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음. 그러니까 '다섯 살 인간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니라 '갓 태어난 강아지도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수준으로 변형해야 했음......
어찌저찌 몇 개의 마법을 변형하는데 성공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는 깨어진 독수리 부대에 들어갈 수 없었음. 시험에서 죽기 딱 좋은 실력이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더 변형하지 못하고 시험에 응하게 됨......
그리고 나는 그 시험에서 이 영애가 가진 특별한 능력을 깨닫게 됨. 타인의 마력을 제 것으로 삼아 마법을 사용하는 능력이라니? 이건 정말로 희귀한 능력이었음. 천신들과 여주인공을 엿보던 그 능력보다도 훨씬 좋은 능력이었음.
물론 타인의 마력을 가져온다 해도 나에게 마법적 지식이 없었다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겠지만, 내가 누구임, 무려 마법의 창시자이자 최초의 대마법사로 불리던 사람 아니겠음? 이 귀족 영애는 아무것도 못했지만, 나는 달랐음. 남과 어떻게든 접촉하기만 하면 마력을 뺏어올 수 있었고, 그러면 본래 실력만큼은 아니어도 그의 절반 정도는 행할 수 있었으니.
그렇게 약간의 역경과 고난을 거치긴 했지만, 내 부대에 다시 합격했음. 나 때문에 덩달아 합격해버린 귀족 영식이 있긴 한데... 뭐 그것도 운명이겠거니 하고 넘김. 나에게 중요한 건 내 부대원들을 만나는 거였으니까.
현재 부대에는 단 한 명만이 남아있었음. 내가 대장일 때, 나에게 귀족 사회에 대해 알려주고, 서류 작업을 함께해준 그 사람. 가장 이성적이고 냉철하던 그 사람은, 다크서클이 이만치 내려와서는 눈빛도 흐려진 상태였음.
그도 다른 부대원들을 따라 대장을 찾아나서고 싶었지만, 대장 대신 부대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이성을 붙들어놓고 있던 상황이었음. 새 부대원이 들어와버렸으니, 이제는 그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떠날 수 없게 됐고.
그는 나와 귀족 영식을 열심히 교육시켰음. 자신이 없어도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정말 열심히 가르쳤음.
그러던 도중, 나에게서 대장의 모습을 몇 번이고 발견했지만... 나를 대장이라 생각하지는 않고, 그저 본인의 마음이 약해졌다 여기며 자책하고 나에게 사과하기까지 했음.
그를 보며, 나는 내가 대장임을 말해야 할까 고민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함. 내가 대장이라고 밝혀도 믿지 않을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로는... 내 육신을 되찾겠다며 천계로 가려 할 것 같았기 때문임. 무엇보다 나에게 천계에서의 일에 대해 물어볼 텐데, 거짓으로 잘 지냈다고 답할 수는 없었고, 그럼 결국 천신들에 대한 복수심만 키워질 게 분명했음.
나는 내 부대원들과 평화롭게 지내고 싶은 것이지, 천신들에게 복수하고 싶은 건 아니었기에... 이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계속 고민했음.
그리고 그런 나에게 전해진 충격적인 소식이 있었으니... 바로 천신들이 미쳐 날뛴다는 소식이었음...... 아니 내 부대원들로도 미친놈은 충분한데 천신들도 미쳤다고? 이미 미쳐있던 놈들이 더 미쳤다고????
좀 더 알아보니 '납치해간 인간이 죽어서 미쳐버렸다'는 소문이 돌긴 했는데... 아니... 왜......?
인간들은 '납치된 영웅이 끝까지 천신들에게 맞서다가 장렬히 사망'했다며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고, 천신들은 '납치한 인간이 이유없이 죽어버려서' 미쳐 날뛰고 있고, 내 부대원들은 '우리 대장이 납치돼서 미칠 지경이었는데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서 진짜로 미쳐버린 채' 날뛰고 있고...... 진짜 환장할 노릇이었음......
그렇게 나는... 부대원들도 설득하고 천신들도 설득해서 돌려보내야 하는 처지에 놓임...... 근데 그러려면 내가 대장임을 납득시켜야 한대...... 나는 그냥 부대원들과 하하호호 평화롭게 지내고 싶을 뿐인데...... 천신들에게서 벗어나서 부대원들과 평화롭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아무튼... 엔딩을 보고 싶었으나 엔딩은 모른 채... 그저 미쳐돌아가는 상황에서 함께 미치고 싶어지는 꿈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