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메모

마법이 없는 현대 륜집트의 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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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해가 있지만 마법은 없는 현대 륜집트를 배경으로 함. 마법이란 게 없다보니 하해의 역할은 원작에 비해 굉장히 축소된 상태였음. 원작에서는 마법과 관련된 재해도 처리하고, 다른 세계와 교류도 하며, 동시에 (표면적으론) 국제기구로서 온갖 기록물을 관리 및 문화 보존을 위한 일들을 하고 있었는데. 이 꿈에서는 기록물 관리만을 맡고 있던 거임.

 

할 일이 원작보다 적다보니 하해 인원들도 그렇게까지 많을 필요가 없었고, 꽤나 공개적이었던 원작에 비해 소규모 비밀 조직에 가까워지지 않았나 싶음. (물론 그렇다 해도 국제기구인 만큼 어느 정도의 인원은 있었지만.)

 

현대에 와서, 나를 비롯한 여러 인원들은 유희를 즐기러 다녔음. 더 정확히는, 서로 돌아가며 일과 유희를 반복해나감. 꿈의 시점에선 내가 유희를 즐기고 있었는데, 아마 대학생 신분인 것 같았음. 국내 캠퍼스에서 (이미 다 아는 내용이었지만) 수업도 듣고, 친구(라기엔 까마득히 어린 녀석들)도 사귀며 대학생활을 즐김.

 

그러면서도 때때로 하해의 일을 처리했음. 나를 거쳐야만 하는 일이라거나, 굉장히 중요해서 모두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는 그런 일들. 진짜 대학생이었다면 못했겠지만, 나는 대학의 여러 면모를 이미 알고 있던데다가 이것을 그저 유희로 여기고 있었기에, 하해의 일과 대학을 병행해도 문제가 생기지 않았음.

 

아무튼. 그러던 어느 날, 하해와 협력한 기관에서 이상한 움직임을 포착함. 하늘과 땅과 바다의 움직임이 모두 평소같지 않은 거임. 무슨 사단이 나도 날 것이라고 확신하며 하해측에 관련 자료를 부탁했는데, 하해에서도 그런 움직임은 본 적이 없어 비상이 걸린 상태였음. 과거를 토대로 계산하자니 과거엔 같은 일이 없었고, 알려진 모든 이론을 토대로 계산하자니 너무 많은 변수탓에 정확한 계산이 어려웠음.

 

하지만 그런 계산이 있든 없든, 이를 알게 된 모든 사람은 같은 확신을 가짐. 아, 많은 사람이 죽겠구나. 그리고 어쩌면 인간이란 종 자체가 몰락하겠구나.

 

하해는 기록물을 모두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에 보관하고 있었지만, 그건 아날로그에 해당하는 것들 한정이었음. 종이에 쓰인 것, 바위에 쓰인 것, 점토에 쓰인 것. 이런 것들만이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었고, 디지털 기록물은 이런 상황에서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음. 당장 전기만 끊겨도 전자기기들이 먹통이 될 것이고, 그럼 디지털 기록물에도 영향이 갈 게 분명했음. 잠깐의 정전도 아니고 '재해'에 해당할 정도라면, 전기가 다시 이어질 거라 확신할 수도 없었고.

 

기나긴 역사 속에서, 하해는 언제나 백업본을 만들어왔음. 디지털 기록물 역시, 아날로그 형식으로 백업하고 있었음. 하지만 모든 것을 백업하진 못했고, 대략 3할의 기록물만 백업된 상태였음. 재해가 닥치는 순간, 나머지 7할은 소용없는 것이 되어버릴 예정이었음.

 

그래서 하해는 재해에 대비하여 디지털 기록물을 아날로그로 바꾸는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함. 인류가 멸종하더라도 이 기록만큼은 남기겠다는 의지로, 대부분의 인력을 이 작업으로 전환했음. 바깥에서 보면 갑자기 하해의 활동이 없어진 것처럼 보이겠지만, 굉장히 이상해 보이겠지만, 하해로선 그런 걸 신경쓸 겨를이 없었음. 다른 협력기관들도 마찬가지였고.

 

많은 국제기구들의 활동이 줄어들자, 대중도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음. 대부분은 전쟁이 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주 소수의 사람은 전쟁이 아닌 자연재해가 닥칠 것이라고 생각했음. 그들은 다름아닌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음. 평소와는 다른 자연, 평소와는 다른 국제기구들. 그렇다면 인간에 의한 재해가 아닌, 자연에 의한 재해가 올 것이라고 믿는 게 타당했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국제기구들은 하던 일을 계속했음. 대중의 혼란이 커지고 있음을 알면서도, 사회가 불안정해지고 있음을 알면서도, '인류사회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기구가 아닌 이상 대중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음. 그들의 영역 안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려 했음.

 

그리고, 마침내 재해의 날. 나는 하해의 연락을 받고 본부로 이동하는 중이었음. 못해도 일주일 내에 큰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기에, 유희를 즐기던 모든 인원들의 복귀가 결정된 상태였음. 하해 인원 중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자들은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고,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사는 자들만이 하해에 남아 기록을 지키기로 했음.

 

대부분의 인원이 각자의 자리로 향했으나, 나는 사회에서의 어떠한 일 때문에 남들보다 복귀가 약간 늦어진 상태였음. 그래도 아직 조금쯤은 시간이 남아있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도 있긴 했음. 적어도 하해 본부까지 갈 시간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임.

 

그런데 이게 웬걸, 내가 사회에서의 일을 마치고 하해로 귀환하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재해가 터진 거임. 예측했던 일주일 중 단 사흘이 흐른 시점이었음.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자연재해가 나타났음. 어느 곳에선 폭풍이, 어느 곳에선 홍수가, 어느 곳에선 지진이, 어느 곳에선 화산이, 어느 곳에선 해일이, 어느 곳에선 폭설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내가 하해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한나절이면 충분했음. 그렇다면 이런 재해 속에서 하해까지 가는데는 얼마나 걸릴까? 하해에 도달하기 전에 죽지는 않을까? 나는 답지 않게 겁먹은 상태였음. 이번엔 정말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음.

 

재해가 닥치고 나니, 하해와의 연락도 두절되었음. 나는 바로 직전에 했던 연락을 몇 번이고 되새기며, 내가 가진 모든 정보를 종합하여 하해까지 가장 안전하게 갈 수 있는 루트를 계산하려 애썼음. 하해측에서 보내주었던 재해에 관련된 정보를 잊지 않으려 애썼음.

 

다가오는 높고 깊은 물길로부터 도망치며, 다가오는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며. 불안과 절망이라는 감정 속에서 이성을 찾으며,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희망을 찾으며. 하해의 일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그런 꿈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