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메모

잃어버린 기억 속 나를 대변하여 살아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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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현대+로판 같은 꿈이었어. 약간의 추리물도 있었고, 판타지도 많았고... 사실 로맨스는 애매해. 로판이 아니라 판로에 가까운 장르?

 

암튼 나는 추리를 그럭저럭 잘하는 민간인이었고, 내 옆에는 진짜 탐정이 있었어. 위험에 빠진 날 구한 뒤 집에 데려다주는데, 자꾸만 사건이 터지는 거야. 나는 집이 돌아가지 못한 채 탐정과 함께했고, 결국 내 추리력을 인정받고야 말았어... 별로 안 좋은 일이었지.

 

많은 사건을 해결한 뒤, 나는 계속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어. 무언가가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 탐정에게 이에 대해 말했는데, 몇 번 정도는 주변을 살펴주더니 아무것도 없는 걸 여러 번 확인한 뒤로는 그냥 네 착각이라며 넘겼어. 마치 고된 일정에 지쳐 환각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야.

 

나는 억울했어. 지금도 계속 시선이 느껴졌거든. 탐정이 못 느끼는 감각을 내가 느낀다는 게 이상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원래부터 그런 쪽으로는 감각이 뛰어났어.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전부 생생히 경험하던 사람이라고. 귀신도 보았고, 가끔은 타인의 마음도 읽었단 말이야.

 

그런 내 감각이 잘못될 리가 없었지. 하지만 탐정은 더이상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고, 나는 입을 삐죽거리며 다음 기회를 노렸어. 진짜 큰 사건이 터져서 그가 후회했음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 ...그렇다고 해서 또 내가 위험에 처하고 싶다는 건 아니었는데 말이지.

 

나와 탐정은 어느 커다란 병원에 도착했어. 나는 그곳이 거대한 실험실임을 바로 눈치챘지만, 미신따위를 안 믿는 탐정은 그냥 병원으로만 생각했어. 나는 여차하면 탐정 뒤로 숨을 생각을 하며, 탐정의 소매를 붙잡은 채 이동했어. 그리고 그때쯤, 탐정도 시선을 느꼈어.

 

탐정은 나에게 사과했어. 저게 당신이 느끼던 시선이었냐며 물어왔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어. 시선의 위치를 파악하려 했지만, 너무 많은 고층건물이 나열되어 있었고, 또 시선처리를 잘못하면 그 감시자에게 들킬 게 뻔했어. 결국 위치를 파악하는 걸 포기했지.

 

감각을 곤두세운 나는 지쳐버렸고, 탐정은 날 진료받게 했어. ...사이비 집단의 실험실인 걸 아직도 모르더라고. 어쨌든, 나는 거부하려 했지만 실패했어. 탐정을 설득하려면 이것저것 설명해야 할 게 많았는데, 그것들을 이 사이비들 앞에서 말할 수는 없었잖아. 결국 난 주사를 맞았어.

 

무슨 주사였는진 잘 모르겠어. 그냥 근육을 파고드는 바늘의 감촉과 굳어버리는 근육의 느낌이 생생했을 뿐이야. 이후 탐정은 쉬고 있으라면서 날 두고 떠났어. 아마 원장과 함께 병원을 둘러보려는 것 같았어. 남겨진 나는 신도들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2층 강의실에 끌려갔어.

 

반강제인 이유는... 내가 딱히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일단 저항했다가 더 큰 위험에 처하면 곤란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저들이 범죄자라는 증거를 모으고 싶기도 했거든. 나는 주사 맞은 왼팔이 아파오는 걸 느끼며, 그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어.

 

그렇게 도착한 곳은 평범한 교실 같았어.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학생들이 있었어. 물론 사복 차림이었지. 그들은 사이비에게 세뇌당하고 있었어. 실험당하는 것도, 실패하면 폐기당하는 것도 당연하게 여겼어. 나는 갈 땐 가더라도, 저들은 구하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 아직 어리잖아.

 

하지만 이 생각도 잠시 흔들렸어. 실험체로 있던 기간이 길어서인지, 그들은 정말 폭력적이었거든. 날 제물로 바치면 좋겠다며 옷을 벗기려 들길래, 그 애의 팔을 붙잡고 날려버렸어. 갑자기 생긴 괴력이 이상할 만도 한데, 나는 그것이 주사의 효과임을 단번에 눈치챘어.

 

다른 애들도 괴력보다는 내가 저항했다는 행동 자체에 주목하는 느낌이었어. 하필이면 내가 날려보낸 상대가 가장 뒷배가 많은 애였던 거야. 다들 앞으로의 내 인생이 고달플 거라고 생각하더라고. 그런데 그 아이의 옆에 있던 아이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어. 혼자서만 나를 이용할 생각을 했어.

 

나는 그에 흥미를 느꼈어. 저 아이만 다른 생각을 했잖아. 그 아이만 세뇌에 덜 당한 느낌이었어. 나는 그 아이를 따라다니기 시작했고, 예상대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어. 세뇌에서 풀린 아이들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탈출을 시도한 아이들이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말이야.

 

이쯤되니 탐정은 거의 잊혀졌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겠고, 살아있다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언젠간 날 다시 데리러 올 것이라 믿긴 했지만, 그렇게 큰 기대는 없었어. 자발적으로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지. 이왕이면 저 아이들의 세뇌도 풀어서 말이야.

 

어쨌든,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특이한 점들도 발견했어. 나에게 날을 세우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의 기억 속에는 내가 가득했어. 그러니까, 그 남자의 잊어버린 기억 속에 말이야. 정작 내 기억에 그 남자는 없는데도 말이지. 나는 내 과거의 기억이 조작되었음을 깨닫기 시작했어.

 

하지만 나는 기억을 되찾지 못했어. 그 남자가 모든 기억을 되찾고 나를 보며 울먹이는 순간까지도, 나는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했어. 정보를 모으는데 집중했다는 뜻이야. 그리고 난 그런 사람이 몇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먼 과거에 날 만난 사람들, 그러나 세뇌에 의해 날 잊은 사람들을 발견했어. 그들은 사사건건 나와 부딪혔고, 그때마다 기억을 되찾았어. 나는 그들의 기억을 읽으며 과거를 짜맞췄지만, 여전히 내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어. 정말로 없는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딱히 초조함이 들진 않았어. 내 기억이 없더라도 저들의 기억을 읽으면 될 일이었고, 저들과의 관계가 내 생존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거든. 그렇기에 망설이지 않고 계속 행동했어.

 

사이비 과학자의 보고서를 슬쩍 읽은 뒤 돌려놓기도 했고, 세뇌가 풀리고 있다는 보고를 조작하여 세뇌가 잘 유지되고 있다는 내용으로 바꾸기도 했지. 아마 다른 사람들은 몰랐을 거야. 그저 세뇌가 풀려가는데도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윗선이 이상하다고만 생각했겠지.

 

그러는 동안, 어떤 아이들은 탈출을 계획했어. 내가 따라다녔던 아이와 그의 연인이 그랬어. 그 아이, 이니셜 중 하나가 U인 그 아이는 연인과 함께 죽음의 여행을 떠나려 했어. 탈출하다 죽을 게 뻔하니, 차라리 한날한시에 같이 죽기를 꿈꿨어. 이런 곳보단 밖에서 죽기를 원했고.

 

나는 당연히 반대했어. 고작 그런 이유로 죽음을 택하는 건 아깝다고 생각했거든. 조금만 있으면 다른 이들의 세뇌도 풀릴 것이고, 그들의 능력을 이용하면 병원을 뒤집은 뒤 다같이 탈출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지금 탈출하려는 이유를 몰랐어.

 

U는 말했어.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야. 우리는 바깥 세상에서 죽기로 약속했다고! 죽지도 못한 채 떨어져 지내는 것보단 죽는 게 나아!" 그는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을 꿈꾸는 것 같았어. 자신은 줄리엣, 연인은 로미오. 죽음조차 그들을 갈라놓을 수 없다고 믿고 있었지.

 

나는 반박했어. "너는 그렇게 죽음으로 도피할 거야? 죽음 같은 건 허무해.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너희는 행복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네 가족과 친구들이 슬퍼할 건 생각하지 않아? 남겨진 자들을 책임질 수 있는 게 아니면 포기해. 그딴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책임감을 생각했어. 죽은 뒤, 내 소식을 듣고 슬퍼할 사람들, 아직 나와의 관계를 놓지 못한 사람들, 날 그리워 할 사람들까지. 난 그들을 책임질 수 없기에 살아남았고, 지금도 살아남으려 애쓰고 있었어. 내 생존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어. 내가 책임질 건 한두 개가 아니었다고.

 

U는 계속해 소리쳤어. "뒤늦게 들어온 주제에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 넌 아무것도 모르잖아.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넌 모르잖아! 넌 바깥에서 평화롭게 살아왔잖아! 그런 주제에 우리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마. 이 비겁자야.“

 

나는 흥분했어. 이유는 알 수 없었어. 내가 잊은 과거의 나를 대변하듯 소리친 것 같아. "사랑하는 사람과의 죽음? 내가 그런 걸 모를 것 같아? 나는 죽지 못해.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죽지 않기를 바라니까, 내가 계속 살아남기를 원하니까! 내가 이 생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니까!“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죽더라도, 그 사람은 계속 살았으면 좋겠어. 슬프고 고통스럽더라도, 그냥 그렇게라도 살았으면 좋겠다고! 날 따라 죽는 것 따윌 원할 것 같아? 그딴 죽음을 내가 인정할 것 같아? 웃기지 말라 그래. 따라 죽는 건 사랑이 아니야. 어떻게든 살아남는 게 사랑이라고!“

 

U는 당황했어. 그는 말문이 막힌 채 나를 바라보기만 했고, 나는 절규하듯 쏟아낸 감정을 수습하려 심호흡만 반복했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내 과거를 알 순 없지만, 나는 아직도 그 미지의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확신이 들었어. 그리고 그가 아직 살아있다는, 예지와도 같은 생각이 스쳐지나갔어.

 

그리고 여기서 꿈이 끝났습니다^^...... 뒷이야기 어딨어... 아직 탐정이 어떻게 됐는지도 안 나왔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도 안 나왔고, 사이비가 어떻게 처리됐는지도, 세뇌당하고 실험당한 사람들이 어떻게 탈출했는지도, 그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지도 안 나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