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속의 '세븐'이 아닌 세트
오늘 꿈에서 세트로 추정되는 사람이 나왔어... 나는 어딘가에 납치당해 갇혀있다가 탈출하는 중이었는데, 지하에서 지상으로 통하는 문에 장정 여럿이 서 있는 거야. 미리 준비해온 마취침을 걔네 목에 꽂은 다음 밀어내며 이동했어.
그렇게 도망치다가 문득 불길해져서 뒤를 돌아보니, 장정 중 딱 한 사람은 쓰러지지 않고 날 쳐다보고 있는 거야. 무감정한 눈동자로 정말 또렷하게. 나는 소름돋아서 뒷걸음질쳤는데, 그 장정은 날 나른하게 쳐다보기만 할 뿐 움직이지 않았어.
얼른 도망쳐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저 사람이 왜 나를 쫓아오지 않는지 궁금해졌어. 머뭇거리며 "안 쫓아와?"라고 물었더니, 그는 "쫓아갈 이유가 없다"라고 답했어.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어. 눈을 찌푸리며 그를 관찰하듯 훑다가, 눈밑의 문신을 발견했어.
"하지만 너는 세븐이잖아." 생각을 거치지 않고 튀어나온 말이었어. 내가 왜 그런 문신을 알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지. 지하에서 쉽게 탈출할 정도로 특이한 능력이 있다고는 하나, 저들의 조직 속 규율 같은 걸 알고 있진 않았어. '세븐'이 조직의 가장 큰 암살집단이라는 것도 원래라면 몰라야 했지.
불쑥 튀어나온 말에 나는 당황하며 멈칫했고, 그는 '세븐'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표정 변화 없이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어. 분명 그가 나를 죽일 것이라는 두려움이 들었고, 얼른 도망치려 했어. 열심히 뛰다가 뒤를 바라보았는데, 이상하게도 그는 뛰지 않고 걷는 중이었어. 이미 날 붙잡은 것처럼.
의아함을 느끼던 찰나,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이 있었어. 아주 거대한 함정 미로였지. 밟으면 불이 뿜어져 나오는 곳, 땅이 꺼져 절벽으로 떨어지는 곳 등 여러 함정이 있었어. 이곳은 외길인지라 다른 방법이 없었고, 나는 미로를 통과해야만 했어. 하지만 죽을 확률이 너무 커서 망설여졌지.
내가 망설이는 동안, 그는 큰 보폭으로 다가오고 있었어. 점차 가까워졌고, 몇 초만 더 있으면 내 앞에 설 것 같았어. 그런데도 나는 미로로 발을 들이지 못했어. 너무 불안했거든.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에게 물었어. "이 미로에선 마법을 쓸 수 없지?!" 그는 그렇다고 답했어.
그가 왜 답해줬는진 모르겠어. 내가 왜 그한테 질문을 던졌는지도 모르겠고. 다만, 그가 내 질문을 무시하지 않을 거라는 희미한 직감이 있었어. 그리고 어쩌면 날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지. 나는 그가 등 뒤에 설 때까지, 미로를 바라보고만 있었어. 마침내 그의 몸이 내 등에 닿았어.
그는 날 죽이지 않고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미로를 지나가게 해줄까?"라는 말을 뱉었어. 나는 흔들리는 동공을 숨기고 싶어 고개를 숙였어. 내 뒤에서, 그는 두 손을 사용해 나를 옭아맸어. 한 손은 배에 둘러 안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턱을 감싼 뒤 들어올렸지.
나는 고개가 살짝 꺾인 채 그와 눈을 마주하게 됐어. 꿈속에선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 무척 미묘한 자세였어. 백허그 상태에서 키 작은 사람이 고개를 들어 서로를 마주보는 건... 아무래도 그런 분위기잖아.
그리고 그는 그 분위기대로 행동했어. 턱을 잡고 있는 손의 손가락으로 볼을 쓸어내리기 시작한 거야. 나는 당황하지도 않고, 그를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어. 홀린 것 같은 기분이었지.
그는 내 표정을 살피며 '7번만 확인해보자'고 생각했어. 무엇을 확인할 것인지는 몰랐지만, 나는 그가 날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됐어. 그는 내 얼굴에서 손을 떼어낸 뒤, 미로의 길을 알려주려는 듯 행동했어. 더 정확히는 나를 안아든 채로, 자신이 직접 미로를 걷고자 했지.
하지만 미로에 들어서기 직전, 뒤에서 수많은 늑대가 다가와 으르렁거렸어. 그는 표정을 구기며 늑대에게 닥치고 꺼지라는 듯한 턱짓을 했어. 늑대들은 안쓰러운 소리를 내며 멈추었지만, 그들의 뒤에서 몸집이 거대한 자가 나타났어. 이 조직의 장이었지.
그는 조직의 장을 보고, 성가시게 됐다며 중얼거렸어. 잘은 알 수 없었지만, 세븐인 그는 조직 자체에 충성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어. 어쩌다보니 세븐이 돼서 활동하는 느낌에 가까웠지.
이를 확인한 나는 조직의 장이 더 다가오기 전에 미로로 뛰어들었어. 미로에 빠지기 직전, 그는 당황한 모습으로 나를 낚아채며 함께 미로로 빠졌지. 나와 그는 미로에 빠졌고, 미로의 입구는 닫혔어. 늑대들도 조직의 장도, 그 누구도 미로에 들어올 수 없게 됐지.
그는 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왜 섣불리 행동하냐는 뉘앙스가 풍겨왔지.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조직의 장한테 잡히는 것보단 빨리 나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리 행동한 거였어. 그토록 무서운 미로지만, 그가 날 빠져나가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말이야.
터무니없는 믿음이긴 했지만, 지하에서 날 탈출시킨 직감이니 믿을 만했어. 오히려 그때의 직감보다 더 확실한 믿음이었고. '그는 날 해치지 못하며, 이 모든 장소에서 탈출할 때까지 지켜줄 것'이라는 절대명제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야.
세븐은 본래 장의 명령에 충실해야 했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명령에 불복종할 것 같았어. 그는 세븐이되 세븐이 아닌 존재 같았어. 그래서 세븐이라는 표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척 편하게 행동했던 거야. 원망이나 증오 같은 것도 없었고, 오히려 긍정적인 감정만 들었어.
꿈은 여기서 끝났지만, 깨어난 뒤 회상해보니 그가 세트와 똑같이 생겼음을 알게 됐어. 흐트러진 검은 머리에 날카로운 깊은 눈매, 파악할 수 없는 검은 눈동자 같은 것들. 눈밑의 표식 빼고는 모두 세트였지. 생각해보면 성격도 나름 비슷하고 말이야. 어쩌면 현판au를 보고 온 건 아닐까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