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메모

수화상극 - 요괴인가 신수인가, 반요인가 반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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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존재에 대해 요괴냐 신수냐 말이 많았고, 어느쪽에선 반요라 부르지만 다른쪽에선 반신이라 부르고... 결국 인간에게 해가 되면 요괴, 득이 되면 신수라 부르기로 했지만 이것도 논쟁의 여지가 많았었어.

 

자신들을 멋대로 지칭하는 인간들에 지친 존재들은 반으로 갈라섰는데, 한쪽은 인간친화적이고, 한쪽은 인간적대적이었어. 나는 친화적인 쪽의 반신이었고, 누군가는 적대적인 쪽의 요괴였지.

 

대부분의 반신 혹은 반요는 인간친화적이었어. 적대적인 쪽에서는 인간을 섬멸하고자 했고, 반쪽짜리 신수를 인정하지 않았거든. 하지만 인간친화적인 존재가 인외라는 이유만으로 배척하는 무리가 있었고, 반신임에도 반요라 불리며 세상에 나설 수 없는 존재가 많았어. 그 중 하나가 나였고.

 

신수라 인정받은 자들은 대개 아름다운 날개가 있었어. 흔히 말하는 아우라가 시각적으로 표현되었다면 그런 모습이었을 거야.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아름다운 날개를 지닌 신수는 인간에게 지쳤고, 인간을 떠나 신수만의 세계를 만들자고 주장했어. 그는 인간을 배신한 요괴들의 수장이라 불리게 됐지.

 

많은 신수들은 그를 따라나섰고, 기실 인간의 편에 선 순수한 신수는 몇 없었어. 인간의 편에는 반신과 반요만이 가득했지. 그조차도 날이 갈수록 반의 반만 신수인 자들이 늘어났고. 머나먼 조상이 신수였던 인간들이 가득했지.

 

인간에 적대적인 존재들은 이 무리를 보며 수치스러워 했어. 자신이 인간과 정을 나누었다는 증거였고, 과거 자신의 어리석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지. 신수만의 세계를 만든 그들은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살았고 능력도 커져만 갔는데, 그의 후손인 인간들은 일찍 죽고 능력도 보잘 것 없던 거야.

 

한없이 인간에 가까운 후손은 그들에게 있어 수치였고, 치욕이었어. 인간에게 휘둘리던 과거를 떠올리게 했지. 또한 영생에 가까운 삶을 누릴 수 있지만, 그들은 후손에게 쉽게 죽을 수 있었어. 후손만이 그들을 인위적으로 죽일 수 있었어. 이 점은 그 존재들을 더 화나게 만들었지.

 

결국 순수한 신수들은 후손에게 제약을 걸었어. 우리가 너흴 사랑할 때에만, 너희는 우릴 죽일 수 있을 것이라는 암시였지. 그 암시에도 불구하고 후손들은 인간을 위해 신수에게 끊임없이 도전했고, 계속해 죽어나갔어. 결국 반신과 쿼터신, 이하 신수 혈통의 인간의 수는 손에 꼽힐 정도가 됐어.

 

그리고 그 즈음부터 신수들은 인간을 격렬히 죽이고 싶어 했어. 본래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것으로 만족하려 했는데, 계속해 자신들의 세계에 기어들어와 위협 시도를 했으니까 짜증났겠지. 인간을 죽이고 그 세계도 우리가 차지하자는 의견이 늘어났어.

 

가장 아름답던 신수는 이 격렬한 주장에 손을 들어줬지. 그는 푸른 머릿결에 걸맞은 푸른 날개를 펼쳤고, 인간 세계로 뛰어들어 학살을 잠행했어. 인간이 누려온 문명은 순식간에 불타 재만 남았고, 그가 지나간 곳은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지 못했지.

 

반신 중 하나였던 나는 그를 찾아갔어. 이해해보려고 했지. 어쨌든 나는 마지막 남은 반신이었고, 인간의 편에 선 무리의 수장이었으니까. 그의 심정을 이해한다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라 믿었어. 하지만 그저 착각이자 오만이었지.

 

그는 나를 믿지 않았고, 비웃으며 반요라 칭했어. 인간에게 휘둘리며 요괴라 불리는 것을 싫어하던 신수는, 이제 대적하는 자신들의 후손을 요괴라 부르게 된 거야. 인간의 사상을 답습해버렸어. 인간을 증오하기에 그 사상마저 받아버린 거야.

 

나는 그를 안타깝게 여겼지만 그가 학살자라는 건 너무 분명했고, 대화가 통하지 않으리란 것도 명확했어. 우리는 싸워야만 했고, 어느 한쪽이 전멸해야 끝날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간의 병기는 신수에게 통했어. 반신의 능력은 미약했지만, 인간의 기술력을 이용해 비슷한 수준으로 싸울 수 있었어. 신수의 피가 흐르는지조차 알 수 없는 다른 후손들도 이 기술을 이용해 신수와 맞섰지.

 

사실 이것은 소모전이었어. 인간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전쟁이었으므로, 어느 쪽이 이기든 인간측에겐 손해였지. 결국 신수가 절대 통과할 수 없는 거대한 도시를 세웠어. 신수의 피가 20% 이상 흐르면 통과할 수 없는 곳이었지. 더 정확히는 신수의 능력을 많이 갖고 있을수록, 더 강할수록.

 

신수의 피라는 건 애매했으니까, 그저 강함의 정도라고 정의한 거야. 피가 옅어진 인간이 많아서, 대부분은 이 도시에 들어갈 수 있었어. 그러나 전쟁의 전면에 선 자들, 반신과 쿼터신들은 도시 밖을 떠돌아야 했지. 반신인 나와 4명의 쿼터신은 다 파괴된 도시를 전전했어.

 

우리가 안쓰럽던 것인지는 몰라도, 신수들의 수장은 우릴 봐주었어. 우리가 쉬고 있을 때는 전쟁을 벌이지 않았고, 우리가 다 회복하면 그제야 전쟁을 시작했지. 인간을 위해 싸우는데 정작 인간에게선 버림받은 우리를 어떻게 보았을까? 어쩌면 과거의 자신을 투영했을지도 몰라.

 

어느 날에는 나와 그만이 마주친 적이 있었어. 쿼터신들은 정찰을 보냈고, 나는 파괴된 도시를 정리하는 중이었지. 도시에 들어가지 못한 인간이 남아있을까봐, 그들을 위해 피난소 비슷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어. 내 힘을 조금만 이용하면, 신수가 파악하기 힘든 공간을 만들 수 있었거든.

 

자세히 관찰한다면 모를까, 무작정 전진하는 신수들은 얼핏 보고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었어. 신수들의 수장은 금방 파악하겠지만, 내가 만든 공간을 그가 굳이 파괴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어. 그는 우리를, 아니, 나를 봐주고 있었으니까.

 

예전에는 그런 적도 있었어.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힘을 아끼는 것은 중요하지만, 살아있는 인간을 지나칠 수 없었지. 그들을 내 힘으로 감싸 보호했고, 수장은 이 광경을 보고 있었지만 한 번 픽 웃고는 지나갔어. 그의 힘이면 단번에 무너질 결계였는데도, 그저 넘어갔지.

 

그는 내 보호하에 있는 자들을 건드리지 않았어. 내 힘이 조금이라도 깃든 존재는 파괴하지 않았어. 쿼터신이든, 인간이든, 기물이든 말이야.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저 그에게 조금의 인정이 남아있다는 것에 감사했어. 나를 얕보더라도 괜찮으니, 더 많은 것이 무사하길 바랐지.

 

또 어느 날에는, 그의 날개를 부러워하며 나도 날개를 갖고 싶어했어. 반신과 쿼터신에겐 날개가 없었거든. 그나마 쿼터신부턴 기계날개를 쓸 수 있었는데, 반신인 나는 신수의 피가 너무 짙어서 기계날개를 쓰려 할 때마다 죄다 망가졌어. 사실상 나에게만 날개가 없었던 거야.

 

물론 날개가 없어도 날 수야 있었지만, 보이는 날개가 없다는 건 나를 슬프게 만들었어. 나만 동떨어진 느낌이었으니까. 하다못해 평범한 인간들도 날개를 달 수 있는데, 왜 나만 날개가 없는지. 그게 너무 괴로웠던 적이 있어.

 

그리고 그날에 그를 만났어. 그날따라 더 아름답게 빛나는 그의 날개를 보고, 나도 모르게 울음이 나올 것 같아 꾹 참았어. 전쟁에 이런 감정따윈 불필요했고, 나는 인간을 지켜야 했으며, 내 수하들은 나를 믿고 있었으니까. 나는 흔들리면 안 됐어.

 

그는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평소처럼 날아다니며 웃어보였지. 웃는 그의 뒤에서는 과거의 도시가 무너지고 있었고, 수하들은 다른 신수를 상대하기 바빴어. 다른 자들과는 달리, 우리는 싸우지 않고 가만히 서로를 응시했어.

 

문득 울컥하고 말았어. 우리는 꽤나 절박한데, 왜 저들은 여유로운지. 나는 괴로워 무너질 것 같은데, 그는 왜 언제나 웃으며 나를 상대하는지. 왜 그렇게 편안해 보이는지. 전쟁을 벌인 존재답지 않은 모습, 언제까지나 평온함을 유지할 것 같은 아름다운 모습. 그런 건 날 더 비참하게 만들었어.

 

나는 내가 너무 부끄러웠어. 저들에게 나는 반요라고 불리고, 날개조차 없는 반푼이로 보일 거 아냐. 인간들에게는 영웅으로 추앙받지만, 신수에게 맞설 유일한 존재로 칭송받지만, 사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저들이 우릴 봐주고 있을 뿐이지. 나는 날개도 없는 존재에 불과한걸.

 

그날은 평소보다도 더 자존감이 낮았고,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 들었어. 너무 지쳐서 다 포기하고 싶었고, 차라리 저들이 나를 죽이고 도시까지 전진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지. 나는 영웅이라 불리기엔 너무 약했어. 능력도 그렇고, 정신도 그렇고. 나약해서 그대로 죽고 싶어졌지.

 

평소라면 웃는 그에게 한마디라도 대꾸하며 싸웠을텐데 그날은 모든 게 다 힘겨웠어. 그가 뭐라고 말을 걸긴 했는데, 그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침잠해있었지. 그는 내 이상을 파악한 것 같았어. 웃음을 지우더니 괜찮냐고 묻더라고.

 

조금 어이가 없었어. 아무도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는데, 정작 적의 수장이 나를 걱정해주다니. 허탈하기도 했지. 영웅이 아닌 나를 파악하는 존재가 그밖에 없었으니까. 나는 대체 뭘 위해 살았던 건지.

 

나는 신경 끄라고 말하며, 능력을 끓어올렸어. 내 감정에 화답하듯 강한 바람이 요동쳤고, 내 주위로 작은 회오리가 생겨났지. 아직도 걱정하는 낯인 그에게 바람을 쏘아보내니, 그는 날개로 바람을 쳐내며 다가왔어. 가까이 올수록 그의 표정이 더 잘 보였는데, 그걸 보고나니 더욱 슬퍼졌어.

 

그는 진심으로 날 걱정하고 있었어. 내 능력이 부족할까, 내가 적을 막아내지 못할까 걱정하던 인간들의 낯짝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난생 처음으로 받은, 오직 나를 향한 걱정이었어. 나는 정말, 정말이지,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어졌어. 지금이라면 그의 제안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어.

 

너를 내버린 인간을 포기하고 우리와 함께 지내지 않겠냐는 제안. 네가 온다면 네가 죽을 때까진 인간계를 무너뜨리지 않겠다는 그 속삭임. 당시에는 외면했지만, 지금은 그저 그대로 따르고 싶었어. 그가 다시 제안을 해준다면, 나는 내 수하들을 버릴 수도 있었어. 그정도로 지쳐있었어.

 

그는 나를 가만히 보다가, 이내 뭔가를 건내려 했어. 그가 다가오는 걸 방치해뒀는데, 누군가가 두려운 목소리로 나를 부르길래 무의식적으로 바람의 벽을 세웠지. 아차 싶었어. 이곳은 전쟁터인데 나는 뭘 하고 있는 건지. 정신을 차려야 했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들었어. 그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벽을 세우지 않았다면, 그가 나에게 건낸 것을 볼 수 있었을텐데. 그런 아쉬움이 든다는 걸 깨달으니 가슴이 철렁해졌어. 이게 그의 속셈이었나, 하고 경계를 심었지.

 

그는 뻗던 손을 꾹 쥐고는 제자리로 돌려놓었어. 걱정하던 기색도 지우려 애를 쓰더니, 이내 손으로 얼굴을 덮고는 한숨을 쉬더라. 뭐라 웅얼거리기도 했는데, 입모양을 봐서는 대충 '내가 뭘 하려던 건지...'였어.

 

연기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가 진심을 드러냈다고 생각했지. 날 걱정한 게 진심이라고 믿고 싶었어. 그냥, 유일하게 받은 걱정을 거짓이라고 믿기에는, 내가 너무 슬퍼질 것 같아서 그랬어. 적이지만, 그래도, 나는 그 걱정이 너무나도 좋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