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망록

1화

7,694자

언젠가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만일 디레의 서사에 개입할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예정된 절망 중 어느 것을 얼마나 비틀 수 있을까? 언제나 상상의 끝은 신의 몰락이었으며, 디레는 그 속에서 몇 번이고 무너졌다. 절망을 안배했던 나는 그저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 미래를 알고 있으나 그저 그뿐. 마법을 사용할 수도, 뛰어난 지략을 갖고 있지도 않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디레가 절망할 때 옆에 있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디레를 보고 싶다는 소망, 그의 유일한 이해자가 되고 싶다는 욕구, 그의 구원자가 되고 싶다는 멍청한 생각. 그래, 멍청한 생각이었다. 실제 그 서사 속에 들어갈 수도 없을뿐더러, 들어가더라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내가 너희를 만들었다며 고백이라도 해야 할까? 누가 보아도 평범한 생물일 게 뻔한데, 화려한 신들 앞에서 너희의 창조주가 이리도 보잘것없는 존재였다고 말해야 할까? 그럴 수는 없었다. 다른 신들은 몰라도, 디레에게 그래서는 안 되었다. 흠결 없이 고결한 유일무이의 절대자를 바라는 디레에게는, 내가 아무리 바랄지라도 내가 너를 만들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언제나 실현 불가능한 상상만을 하던 나는 이집트로 떨어졌다. 아무 징조도 없이, 정말 뜬금없다는 말밖에 안 나오는 상황이었다. 넓게 펼쳐진 사막과 때때로 부는 더운 바람, 아무것도 없이 고요한 장소. 그곳을 이집트라고 판단한 건 비이성적이었지만, 이미 그 상황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상관하지 않았다.

 

최근 유행하던 소설의 클리셰처럼 내 작품 속으로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것이 없어 확신하지는 못했지만, 내려다본 체격이나 여타 것들이 익숙했다. 생활하기 위해 필수적이던 안경은 어디로 갔는지 없었지만, 앞이 잘 보였으므로 상관하지 않았다. 차원 이동의 혜택이라고 생각했다. 옷차림은, 그래, 너무나도 낯부끄럽지만, 검은색 천 쪼가리 하나였다. 다행히 온몸을 가릴 정도의 크기였고, 속이 비치지도 않았다. 이걸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는 처지가 너무 서러웠다.

 

아무튼,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한 나는 주위를 살펴보기로 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지만, 무턱대고 걸어가다가는 길을 잃고 쓰러질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이곳에 머무를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만약 이곳이 디레의 서사 속이라면, 최소한 그 서사를 창조한 인간에게는 어떤 특별한 능력이라도 주지 않겠는가? 최소한 행운이라도 말이다. 나를 사람조차 왕래하지 않는 곳에 떨궈놓은 누군가에게 욕을 하며 직선으로 걸어갔다.

 

정말 한참을 걸었다. 내 인생에서 이만큼이나 걸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시계가 없으니 모르겠지만, 등 뒤에 있던 태양이 어느새 내 앞에 있는 걸 보면 거의 하루가 지났다고 해도 될 것이다. 조금만 걸어도 허리와 다리가 아프던 비실비실한 몸뚱이였는데, 역시나 차원 이동의 혜택 덕분인지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그저 내 정신만이 멍했다.

 

아무것도 없는 모래밭에서 아무런 대화도 없이 홀로 걸어본 적이 있는가? 그런 적이 없다면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라. 어느 영화에서 조난당한 사람이 배구공에 말을 거는 장면이 공감될 지경이니 말이다. 이건 경험해본 사람만이 안다. 미치는 것도 문제지만, 꿈속에 있는 것마냥 이성이 흐려지고 모든 것이 무감각해지게 되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생각하는 것조차 사치이다. ‘나’를 잃는 과정이 있다면 이런 것일까. 필사적으로 되새겨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 생각을 멈춰서는 안 된다. 사고의 정지는 곧 자아의 상실과도 같으리라는 경각심이 든다. 아직은 나를 유지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생각할 거리가 없어질 무렵, 멀리서 움직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위험한 생물일 수도 있었지만 거기까지는 생각이 닿지 않았다. 아니, 사실 위험하더라도 상관없었다. 그저 나에게 살아있다는 기분만 안겨주면 좋았다. 움직이는 물체를 향해 달렸다. 그것은 뱀이었다. 아니, 여우인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계속해 형상을 바꾸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뱀과 여우가 전혀 다른 동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것을 보면, 두 동물은 동일한 개체여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것은 나에게 다가왔다. 꼬리에는 뱀을 달고 고양이의 얼굴을 한 채로. 여우의 몸통이 가까워졌다. 기괴하다면 기괴했지만, 그것은 자연스러웠다. 원래부터 그렇게 태어난 아이로 여겨졌다. 그것은 나에게 길을 알려주었다. 뱀의 혀는 마을로 가는 방향을 가리켰고, 고양이의 얼굴은 그곳에 신이 있음을 말했다. 여우는 그저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것에게 감사하며 신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어떤 신인지는 알 수 없었고 그것의 말을 신뢰할 수 있는지도 의심스러웠지만 어째서인지 그곳은 안전하리라는 안도가 들었다. 어쩌면 내가 상상해왔던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느껴졌다.

 

해가 완전히 질 무렵, 저 멀리 마을이 보였다. 아까 보았던 그것은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드디어 쉴 수 있다는 마음에 한숨을 쉬었다. 마을이 가까워지고 마침내 사람이 보였을 때, 문득 울음이 터져 나왔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사람이 많은 것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 반대였던 것이다. 사람이 많고 시끄러운 곳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온종일 홀로 떠돌아야 했던 나는 사람이 그리웠고, 사람들의 대화 속 담겨있는 온기와 생활감을 반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내 당혹스러워졌다.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건넸지만 나는 그 언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차원 이동의 혜택은 이곳까지 오는 것으로 끝난 것일까? 그들은 나를 보며 수군거렸다. 나는 정말로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화할 수 없었다. 그 사람들의 온기는 나에게 닿을 수 없었다.

 

또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는 무척이나 컸고, 다른 누구보다도 화려했다. 그는 나에게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그림이 새겨진 돌덩어리를 주었다. 아니, 석판이라고 해야 할까? 어쩌면 점토판일지도 모르겠다. 물컹한 것인지 단단한 것인지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공황 상태였기 때문이다. 멍하니 돌덩어리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사람들은 나를 어디론가 안내하려 했다. 다들 따라오라는 듯 나를 이끌었다. 아직 이성이 돌아오지 않았지만, 나에게 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그들을 따라갔다.

 

아마 마을의 중앙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어느 순간 땅으로 꺼진 듯 사라졌고, 그들을 따라가던 나 또한 땅으로 떨어졌다. 마치 개미지옥에 떨어지는 개미를 체험하는 것 같았다. 이 판타지적인 설정에 감탄하며 주위를 살펴보니, 벽화를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거대한 구체를 집어삼키는 뱀과 그 뱀을 집어삼키는 파도였다. 이쯤 되니 모를 수가 없었다. 이 세계는 내가 만든 곳이었다. 그릇된 행동을 한 아펩과 그를 막아선 바다. 아마 이 장소는 눈의 신전인 것 같았다.

 

눈의 신전이 남아있다는 것은 이 시대가 디레의 탄생보다 한참 앞서있음을 의미했다. 나는 대체 어느 시대에 떨어진 것일까? 이성이 돌아올 만하면 다시 아득히 멀어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마저 주위를 살펴보기로 했다. 아니, 그러려고 했으나 사람들이 나를 떠밀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제단 같은 곳에 서 있었고, 사람들은 절을 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내가 제물이었던 것일까?

 

딱히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제물로 바쳐진다고 해도 목숨이 위태로워질 것 같지는 않았다.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는 모른다. 하도 비이성적인 상황만 맞닥뜨리다 보니, 나까지 비이성적으로 변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절이 끝나고, 그들은 나에게 석판을 부술 것을 요구했다. 화난 현대인이 베개를 내려칠 때처럼 그들은 무언가를 잡아 내리치는 시늉을 했다. 잠시 그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구경하다가, 그 시늉대로 석판을 부쉈다. 파편이 몸에 튀었던 것 같지만, 몸에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으므로 확신할 수는 없다. 부서진 석판 조각은 자기 마음대로 공중에 떠오르더니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게 다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당황하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예측해보자면 아마 제물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남의 일을 구경하듯 보고 있다가, 문득 뜨거워진 목덜미를 손으로 쓸었다. 평소 체온이 오를 때의 느낌은 아니었다. 마치 피부가 어딘가에 긁히는 듯한, 혹은 날카로운 것이 표면을 쓸고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프지는 않았으나 기분이 나빴다. 잠시 얼굴을 찌푸리며 목덜미를 천천히 더듬어보았다. 긁힌 느낌이 들던 곳이 그대로 부어올라 있었다. 정말 무언가가 내 목을 긁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저 사람들이 원하던 의식은 성공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 목의 흔적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아주 멀쩡한 모습으로 그들의 기대를 깨부수고 싶었다.

 

나는 옷을 대신하던 천 쪼가리를 좀 더 올린 뒤, 목에 몇 번 감아 스카프처럼 묶었다. 이 행동을 눈여겨본 사람이 있다면 금방 들켰겠지만, 다행히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제단에서 내려온 뒤 아까 눈여겨보았던 벽화로 향했다. 나를 막는 사람은 없었다. 벽화 위에 한 손을 올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뱀의 그림을 손가락으로 툭 쳤을 때도 그랬다. 마지막으로 파도의 물결 모양을 그대로 따라 그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으나, 내 귓가에서는 파도 소리가 울렸다.

 

소설이라면 이런 곳에서 기연을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따라 했던 행동이다. 하지만 정말 이런 장치가 숨겨져 있을 줄은 몰랐다. 내가 소설의 주인공일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물결을 마저 따라 그렸다. 그림을 끝맺었을 때, 나는 더 이상 신전 안에 있지 않았다. 내 앞에는 거대한 호수가 있었고 하늘에는 오로라가 펼쳐져 있었다. 밤처럼 어두움에도 불구하고 환하게 빛나는 태양까지. 그곳은 지상의 사막이 아니었다. 계절과 기후를 무시하는, 낙원이라고 불러도 될 듯한 신들의 공간이었다.

 

신들의 공간. 그곳은 말 그대로 신들만이 드나들 수 있는 낙원이다. 오직 신전을 통해서만 이동할 수 있어 제약이 크지만, 내부에서는 그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 상상하는 것이 무엇이든 이뤄진다. 본래 신들은 창조라는 행위를 시도할 수 없지만, 이 공간 내에서는 생명을 제외한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다. 또한, 이곳의 중앙에 있는 호수에서는 신들이 태어난다. 때가 되면 호수 한가운데의 기둥이 빛나고, 작은 씨앗을 배출한다. 이 씨앗은 점차 자라 꽃봉오리를 맺고, 꽃봉오리는 기둥에서 호숫가로 서서히 이동하며 개화한다. 만개한 꽃잎 사이에서 눈을 뜬 신은 자신의 이름을 명명한 뒤 자아를 찾는다. 태어난 신이 성장할수록 만개한 꽃잎은 부서지며, 그가 신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되면 꽃잎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신들은 이를 일컬어 ‘신성한 연꽃’이라 부른다.

 

그러나 내가 보고 있는 호수에는 연꽃이 하나도 없었다. 기둥도 존재하지 않았다. 즉, 이 공간은 내가 설정하지 않은 곳이다. 기둥이 없으니 신들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눈과 아펩만이 존재하던 시절일지도 모르겠다. 왜 나를 이곳에 떨구어 놓았을까. 디레도 없고, 신들도 없으며, 신들의 공간조차 완전하지 않은 시대에. 왜 나를 떨구었을까. 도무지 풀리지 않는 매듭을 직면한 기분이었다.

 

고민한 끝에 호수에 들어가기로 했다. 신들이 태어나는 호수는 신성한 곳이라 그 누구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설정이 있다. 후대의 신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였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신성한 호수를 더럽히지 말라며 경고할 신들도 없었다. 나를 말릴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조심스레 발을 담그자 미지근한 온기가 달라붙었다. 천천히 물에 적응한 뒤, 넘어지지 않게 주의하며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무릎과 골반, 가슴, 이내 턱 끝까지 물에 잠겼다. 중앙에 도착하려면 아직 절반은 남은 시점이었다. 아주 어릴 적에 수영을 배우긴 했지만, 중앙까지 갈 자신은 없었다. 몸이 기억하고 있을지의 여부도 미지수였다. 숨을 참고 물속으로 가라앉아 걸어가는 상상을 해보았지만, 도중에 숨이 막힐 게 뻔했다. 사막에서 오랫동안 걷고도 멀쩡한 몸이었으니, 숨을 참고도 멀쩡하기를 바라야 할까.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무엇이든 해보아야 했다.

 

잠시 시험 삼아 잠수해보았다. 언제나 물속이 두려워 눈을 뜨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기에 눈을 뜬 채로 잠수했다. 숨을 참을 수 있는지를 시험하려 했던 것인데, 어째서인지 기시감이 들었다. 방금까지는 미지근했던 온기가 지금은 시원했다. 언젠가의 꿈속에서 자유로이 숨 쉬며 헤엄쳤던 때가 떠올랐다. 땅 위의 숨보다 물속의 숨이 더 상쾌하던 꿈. 숨을 쉬었다가 물을 삼킬까 두려웠지만, 기대감과 확신이 그 감정을 이겼다. 마음을 굳게 먹고 숨을 들이켜자, 놀랍게도 꿈에서처럼 숨을 쉴 수 있었다. 나를 더 놀라게 한 사실은 숨 쉴 수 있다는 점이 아니었다.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는 점이다. 어쩌면 헤엄치는 것도 쉬우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나는 빠르게 중앙으로 헤엄쳤다. 언젠간 거대한 기둥이 세워질 위치로 다가갔다. 그리고 또다시 장소가 바뀌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물속이었다.

 

여긴 어디일까. 내 작품 속에는 이렇게 우중충한 물로 가득한 장소는 없었다. …아니, 있긴 했다. 다만 그곳은 일부 존재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소멸하는 장소였다.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지금 나는 숨 쉬고 있고 생각하고 있으니 살아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 이곳은 눈의 바다가 아니었다. 아닐 것이었다. 한참을 부정하고 있던 나에게, 저 멀리서 눈부시게 하얀 인영이 다가왔다. 새하얗고 금빛으로 찬란한 자, 디아였다. 그는 내 손을 잡았고, 그와 나는 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다시 신들의 공간이다.

 

디아는 눈매를 휘며 부드러운 입술을 달싹였다. 무어라 말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더 정확히는, 그것이 음성인지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나에겐 들리지 않는 공기의 떨림을 만들며, 그는 웃었다. 그의 주변으로 연꽃이 피는 허상이 보였다. 넋을 놓고 쳐다보게 되는 광경이었다. 그가 나를 감싸 안아 이마를 맞대고 나서야 정신 차릴 수 있었다. 그는 다시 속삭였다. 이번에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였다.

 

“미안해. 당신의 균형을 망가뜨린 나를 원망해. 당신에게 아무 설명도 하지 않고, 이리 멋대로 행동한 나를 원망해. 다만 나는 우리의 방황을 끝내고 싶었고, 당신의 외로움을 덜고 싶었어. 그저 그뿐이야.”

 

그의 말은 이해했지만, 그 뜻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의 균형, 저들의 방황, 나의 외로움. 그것들이 대체 무엇이기에 나를 데려온 것일까. 설명조차 없이 그저 원망하라고 하며 사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사막을 거닐며 했던 정리되지 못한 생각들, 신전에 들어서며 느꼈던 비합리적인 감정, 호수에서 떠오른 기시감과 확신.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은 모두 의문이 되어 내 안에 가라앉아 있었고, 나는 이를 해소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내가 문장을 뱉어내기 전, 말을 이었다.

 

“당신은 나의 주인을 만날 거야. 무저갱을 밝게 비추어 오색의 빛무리로 가득 채운 자. 죽음 끝에 사명을 잇는 자. 당신은 그의 갈망을 채워줄 수 있고, 그는 당신의 영원한 이해자가 되어줄 수 있어. 당신이 그를 사랑하는 한, 그는 당신에게 공감할 거야.”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 그와 당신은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어. 미약하게 떨리는 속삭임이 끝나고, 그는 사막을 담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사막에 맑은 빛의 물결이 흘렀다. 이내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고, 나는 그저 디아에게 기댄 채 암전되는 시야를 지켜봐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