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나라의 빛나는 왕녀와 흑백 세상에 사는 술사
붉은 나라의 사랑받는 왕녀로 태어났으나, 모두에게 배척받던 악령에게 몸을 빼앗겨버린 비운의 인물. 어린 시절 차별없이 악령을 보살피고, 그가 자신의 외형을 따라했을 때도 자매가 생긴 것처럼 기뻐함. 악령이 점차 자신을 어둠에 가둬두고 왕녀행세를 하자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으나, 악령과 주변인이 모두 행복해 보여서 자신의 자리를 되찾는 것을 포기함. 그들이 행복하다면 자신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악령에게 몸을 내어주기에 이름.
그렇게 수 년이 흐르고 열여덟살 생일이 되었을 때, 숙부가 반란을 일으키며 남은 왕족들을 살해하려 들었음. 자신의 몸을 차지한 악령은 술사의 도움을 받아 몸을 피함.
술사는 사람들의 영혼을 볼 수 있었으나, 세상이 흑백으로 보이는 대가를 감수해야 했음. 고귀한 영혼만이 그에게 세상의 색을 돌려줄 수 있었음. 그는 어린 시절, 우연히도 왕녀가 고귀한 영혼임을 알게 되고 왕녀를 주시하기 시작했으나, 어째서인지 세상은 여전히 흑백으로 보였음. 왕녀의 몸에 담긴 영혼이 빛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하는 건 없었음. 때문에 왕녀의 피신을 도울 생각이 없었으나, 왕녀의 육체가 아닌 그 주변에 빛이 맴도는 걸 발견하며 흥미가 생겼고, 피신을 도와 자신의 은신처로 데려옴.
이후 왕녀의 영혼은 육체에서 분리되었으며, 그 육체는 악령이 차지하고 있음을 알게 됨. ("그래,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 시야가 빛나는 건 왕녀 때문이었어. 왕녀만이 날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악령을 내쫓고 왕녀의 영혼을 육체에 돌려놓으려 했으나, 악령의 훼방으로 실패. 심지어 은신처마저 발각되어 급히 도망가는 상황이 됨. 그 과정에서 왕녀의 영혼이 육체와 완전히 분리되었으나, 술사는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왕녀의 육체만을 대피시킴. 왕녀의 영혼은 홀로 남아 전세계를 떠돌게 됨.
이를 뒤늦게 눈치챈 술사는 영혼을 찾으려 했으나 악령의 방해로 번번이 실패함. 결국 악령을 먼저 소멸시키기로 결심. 악령은 술사로부터 도망친 뒤, 숙부를 세뇌시켜 자신이 차지한 육체를 다시 '소중한 왕녀'의 위치에 올림. 악령은 술사와 왕녀의 영혼을 완전히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됨. 나라의 모든 병사를 동원함과 동시에, 타국에게도 지원을 요청함. 한편, 술사는 왕녀의 영혼을 찾은 뒤, 그가 본래 육체를 되찾고 왕이 될 것을 돕기로 맹세함. 이를 위해서는 왕녀에게도 실체가 필요했기에, 그에게 임시 육체를 만들어 줌.
결코 죽지 않고, 매우 뛰어난 회복력을 가졌으며, 독 같은 물리적 공격은 물론이고 세뇌 같은 정신적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육체였음. 다만 영혼 자체의 힘을 끌어다 쓰는 육체여서, 술사가 곁에서 보조하지 않으면 영혼이 위험에 처할 수 있었음. 술사와 떨어져 있어도 되는 최대 기한은 기껏해야 일주일. 따라서 왕녀와 술사는 항시 붙어다닐 필요가 있었음. 여의치 않게 떨어지더라도 곧바로 만날 수 있도록 장치가 필요했고, 서로의 정신을 연결하는 술법을 사용하게 됨. 서로가 세상의 끝에 서 있더라도 머릿속으로 대화할 수 있는 술법이었음.
이 역시 대가가 필요했는데, 그건 바로 영혼의 결속임. 서로의 영혼이 영영 묶이는 것. 술사의 입장에선 좋은 일이었음. 왕녀의 영혼과 하나가 되면 언제나 흑백이 아닌 세상을 볼 수 있었고, 이는 다음 생에도 그 다음 생에도 유지될 것이었으니까. 왕녀는 선택권이 없었음. 지금 자신이 의존할 수 있는 건 술사뿐이니까. 술사만이 자신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살릴 수 있으니까. 그래서 영혼의 결속이든 뭐든 상관없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