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메모

영원히 반복될 회귀자들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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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꿈에서 완전 건장한 체격의 경호원이 나왔다... 내가 아가씨였다... 근데 이제 적에 의해 죽을 위기에 처할 때마다 기억을 잃은 아가씨... 우... 중간에 총 맞고 헐떡거리던 게 생생해... 고통은 없는데 숨 넘어가는 느낌은 생생하더라...

 

그거 치료하려고 경호원도 달리고 의료진도 달리고 난리였어. 근데 의원이 맞나...? 좀 판타지적이던데. 암튼 치료받고 이번에도 살아남긴 했지만, 그 판타지적인 것의 후유증으로 적의 정신과 연결돼서ㅋㅋㅋ... 적의 기억을 보다가 발작 일으켰어...

 

애들이 급하게 그 후유증을 없애려고 다른 시술을 감행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고, 적의 공격은 점점 심해졌다^^... 경호원들은 일을 잘하긴 했지만 내가 너무 지쳐버렸어...... 잃어버린 내 기억도 다 돌아오고 있었거든... 끔찍...

 

그리고 실은 내가 회귀자라는 것도 알게 됐어... 정말 무한에 가까운 시간동안 회귀했는데, 나는 그때마다 기억을 잃었고, 적은 그 모든 기억을 갖고 있던 거야. 그러니 회귀의 주축인 내가 증오스러울 수밖에.

 

맨처음 회차에서 그 적은 나에게 일종의 애정을 품고 있었어. 하지만 어떤 사고로 인해 내가 죽은 뒤 회귀했고, 2회차에서 날 지키려 했지. 그런데 그 회차에서 뒤틀려버린 거야. 그 적의 실수로 나는 총에 맞고 괴로워했는데, 그걸 본 적은 가학 성향을... 깨닫게 되고......

 

그래도 그때까진 애정이 커서 괜찮았는데, 회귀가 반복되다보니 애정은 사라지고 가학 성향과 집착과 증오만 남았나 봐. 초반엔 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것으로 그쳤는데, 마지막엔 날 죽여서라도 갖겠다는 마인드로 달려들더라고.

 

한편으론 내가 가장 초반의 회차가 진행되던 세계로 가길 원한 것 같아. 그곳에 가서 회귀를 아예 멈추길 바란 거지. 나는 그걸 깨달은 뒤 경호원의 보호에서 벗어났어. 혼자 적의 본거지로 달려갔지. 경호원은 날 걱정하며 뛰어다녔겠지만, 이렇게 살다가는 계속 회귀해야 할 것 같았거든.

 

적의 본거지엔 아무도 없었어. 정말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어. 적진의 한가운데엔 차원이 뒤틀린 듯한 구덩이가 있었어. 분명 땅에 붙은 구덩이인데, 끝도 없이 내려갈 뿐만 아니라 그 안에 하늘과 여러 건물까지 있었어. 세상을 눕혀서 구덩이에 넣어둔 것 같은 모습이었어.

 

나는 그곳에 뛰어들었고, 이상한 세계에 도착했어. 기껏해야 단칸방 수준의 좁은 세계였는데, 그곳엔 검은 고양이를 의인화한 듯한 사람이 있었어. 그는 나처럼 회귀를 반복하던 중 세계에서 튕겨져나왔다고 해. 그는 나를 보자마자 내 사정을 깨달았어.

 

그는 나를 이끌고 최초의 세계로 데려갔지. 그곳은 그의 첫 세계였고, 내가 존재하기 이전의 세계였어. 그곳에서 나는 뭘 해야 할지 몰랐어. 하지만 곧 경호원을 발견하게 돼. 경호원의 어린시절 모습을 발견했지.

 

그러니까 이런 느낌이야. 나는 n번째 세계부터 존재했고, 고양이인간과 경호원은 1번째 세계부터 존재한 거지. 그 세계의 경호원은 내가 알던 것과는 다른 성격을 갖고 있었지만, 그래도 난 그를 돕기로 했어. 어린시절의 그가 가장 후회한 일을 도왔지. 그리고 그로 인해 미래로 쫓겨났어.

 

나는 아직 회귀자로서의 능력이 약했기 때문에 간섭의 대가가 컸던 거야. 나는 경호원의 10대를 보지 못했어. 정신을 차려보니 10년 넘게 지난 상태였거든. 고양이인간은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고는, 간섭을 최소화하라고 했어. 모습을 드러내는 건 괜찮지만 개인의 인생을 바꾸려 들진 말라고 했지.

 

나는 그 말을 듣지 않았어. 20대가 된 경호원을 돕고 싶었거든. 내가 없는 세계의 경호원은 나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 모든 것을 그저 행운으로 여겼어. 혹은 자신의 노력 덕이라고 여겼지. 한편으론 나에 대한 오해를 쌓으며,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어. 어쩌면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가졌지.

 

나는 너무 슬펐어. 내 세계의 경호원은 항상 날 위해주며 애정을 속삭였는데, 이 세계의 경호원은 날 배척하고 혐오했으니까. 이것도 간섭의 대가라는 걸 느꼈지만, 그를 돕는 걸 포기할 순 없었어. 그렇게 상황만 악화되어 갔어.

 

그러던 중 나는 놀라운 걸 깨닫게 돼. 사실 그 모든 세계는 순환구조라는 걸 말이야. 최초의 세계와 마지막 세계는 연결되어 있었어. 내가 이 세계로 넘어오기 전 적의 본거지가 비어있던 건 그 때문이었지. 자격이 되지 않는 이들은 구덩이를 넘어오다가 죽었지만, 내 적은 최초의 세계로 넘어왔어.

 

그는 내가 없음을 알아차린 뒤 무료하게 살다가 다음 세계로 넘어가는 걸 반복했어. 마침내 내가 있는 세계로 넘어갔을 때, 그는 간섭을 시도했어. 그러나 간섭이 너무 지나친 탓에 그는 튕겨나갔고, 나는 회귀하는 능력을 얻게 됐지. 그러니 내 회귀는 그 누구의 탓이라 하기엔 애매했어.

 

나는 적 때문에 회귀를 시작했지만, 적은 내 회귀 때문에 함께 회귀한 거니까. 원래라면 잃었어야 할 기억을 모두 기억한 채로. 내가 최초의 세계로 넘어오기 전까지 적은 세계를 무한히 넘어갔어. 회귀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되고, 나에 대한 감정이 식을 정도로 무한히.

 

그리고 그는 반복되는 세계에서 나왔어. 똑같은 것이 반복됨에 질린 거야. 그렇게 그는 단절되어 단칸방만한 세계로 왔고, 고양이인간으로 날 반겨준 거지. 내가 그것을 깨달을 때쯤, 최초의 세계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어. 내 적이었던 고양이인간이 죽었고, 다음 세계로 넘어갔지.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이전 세계를 기억하지 못했어. 회귀의 능력은 있었지만, 기억의 저주는 없었거든. 그의 저주는 내가 회귀를 시작하면서부터, 즉,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가 나에게 회귀 능력을 주면서부터야.

 

어쨌든 2번째 세계도 비슷하게 흘러갔어. 3번째 세계도, 4번째 세계도. 그러던 중 드디어 내가 존재하는 세계로 넘어왔어. 내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간섭을 더 줄여야만 했어.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말이야. 잘못하면 도플갱어로서 한쪽은 쫓겨날 수 있었거든.

 

평화롭게 지나가나 했는데 변수가 생겼어. 마지막 세계의 경호원이 구덩이로 뛰어들고, 회귀에 참여하기 시작한 거야. 자격이 없던 그에게 갑작스레 자격이 생긴 탓이었어. 물론 반쪽짜리 자격이라, 그 스스로는 존재할 수 없었어. 결국 그는 최초의 세계의 자신에게 뒤집어 씌워졌어.

 

나와 고양이인간이 5번째에 있는 동안, 그는 1번째 세계에서 자아를 융합했어. 나를 혐오하던 자아와 융합한 거야. 그렇게 나를 사랑하며 보호하려 하는 자아와 나를 혐오하며 배척하려 하는 자아가 합쳐졌어. 보호하는 자아가 훨씬 강했지만, 가끔씩 배척하는 자아가 튀어나오는 상태였어.

 

그는 순식간에 5번째 세계로 넘어왔어. 그는 원래의 자아들과 융합된 상태였고, 그 탓에 5번째에선 조금 불안정했어. 그는 나를 찾아낸 뒤 보호하려 했지만, 정식 경호원이 아닌 낯선 사람이 자신을 보호하려 드는 것을 본 나는 두려움에 떨었지.

 

그걸 깨달은 경호원은 고통스러워했어.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정작 그가 날 공포로 몰아넣고 있었으니까. 그는 나를 몰래 지키기로 했어. 적을 미리 죽이는 한이 있어도 날 지키기로 했지. 하지만 역시나 나는 죽었고, 세계는 흘러갔어.

 

'나'는 그 세계에 간섭하여 경호원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었지만, 그 대가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방관했어. 잘못해서 회귀하는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났다가는 큰일나니까. 그런 나를 지켜보던 고양이인간은 자신이 모든 대가를 책임지겠다고 말했어.

 

어차피 무한한 회귀탓에 감정도 다 희석됐고, 더 살아봤자 얻는 게 없을 거라면서 말이야. 그는 희생했고, 나는 경호원에게 간섭할 수 있었어. 그의 기억에서 나를 지울까 했지만, 이미 너무 많은 부분이 나로 차있는 탓에 그러진 못했어. 그랬다가는 그가 백치가 될 게 분명했거든.

 

대신 회귀에 대한 기억을 전부 지웠어. 이전의 자아는 남아있겠지만, 그래도 하나의 인생에 충실할 수 있도록 말이야. 그때쯤 그의 자아에서 나를 배척하려는 자아는 사라져 있었고, 나를 보호하려는 자아만 남아 회귀를 반복했어. 그렇게 이상할 정도로 날 지키려 드는 경호원이 완성됐지.

 

'나'는 허무함에 빠졌어. 이제 고양이인간도 없으니, 내 주변엔 아무도 없었거든. 저 아래의 세계에선 내가 같은 삶을 반복하고 있지만, 그건 과거의 나잖아. 지금의 나와는 다른 객체였어. 그의 행복도 불안도 지금의 나와는 별개의 것이었지.

 

차라리 나도 고양이인간처럼 죽음을 택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 세계에 어떤 이변이 일어나든, 그냥 크게 간섭하고 사라지는 게 편할 것 같았지. 그래도 그런 미래를 생각하니 세계에 대한 죄책감이 들어서 최대한 참기로 했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내심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