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불꽃 축제
주제: 여름 | 축제, 해변가, 바다, 불꽃축제, 아이스크림, 불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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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결말을 원한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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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가 있다. 다른 마을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마을은 아주 굳건하게 믿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태양이 처음 땅에 내려왔을 때, 우리의 땅과 숲을 어여삐 여기며 우리를 보살펴주겠노라 약속했다는. 하여 우리는 우리의 마을을 태양에게 받아들여진 여름이라 칭했다는. 그런 이야기이다.
허무맹랑하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태양은 온 세상을 비추는데, 그 많고 많은 마을 중 하필이면 우리 마을만을 보살핀다니. 말이 안 되지 않는가.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굳게 믿는다. 그 증거로는 우리의 머리카락과 눈동자의 색상을 드는데…. 그래, 그것만 보면 굉장히 마법 같은 일이었다. 평범한 갈색 머리카락과 갈색 눈동자를 가진 사람도 성인식만 치르면 찬란한 금색 머리카락과 푸르른 초록색 눈동자를 가지게 된다니. 정말 마법 같은 일이지.
나도 어릴 적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 이야기를 믿으며, 성인이 되어 나의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이 변하기만을 기다렸다. 색의 변화는 곧 태양에게 받아들여졌다는 증거이므로. 나도 태양에게 받아들여져, 태양의 보호를 받으며 행복한 여름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너도 알고 나도 알 듯, 지금의 나는 그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아니, 믿지 못한다.
나는 빨간 머리카락을 갖게 되었고, 금색 눈동자를 갖게 되었으니.
마을 사람들은 나를 태양에 대한 모욕이라 칭한다. 불꽃이 태양을 감쌌으니, 감히 태양을 우롱하는 거라나 뭐라나.
…누군 이런 색상을 갖고 싶어서 가진 줄 아는 건지.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나도 똑같은 갈색 머리카락과 갈색 눈동자를 갖고 있었고, 남들과 똑같은 이야기를 믿고 자랐는데. 단 한 번도 특별해지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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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 무렵이었던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촌장님께서 아이들을 한데 모아 동화책을 읽어주신 적이 있다.
제목이 아마…
『우리를 수호하시는 빛』이었던가.
우리 마을이 시작된 계기를 담은, 일종의 창세 신화 같은 것이다.
세계도 아니고, 나라도 아니고, 고작해야 ‘마을’에 그런 신화가 있다니, 비웃어도 좋다. 부디 비웃어주길 바란다. 나는 비웃지 못하니, 네가 대신 비웃어주기를.
아무튼, 촌장님께서는 그 신화를 어린이 수준에 맞추어 가볍게 풀어낸 동화책을 읽어주셨다.
태양이 처음 땅에 내려온 날, 우리의 땅과 숲에 감복하여 우리를 보살펴주겠노라 약속했다는 그 이야기를.
다른 마을과는 달리 평범한 갈색 머리카락과 평범한 갈색 눈동자를 가진 우리를 친히 그 따스한 손길로 어루만져주셨다는 이야기를.
그리하여 우리는 태양을 닮은 금색 머리카락을 갖게 되고, 숲을 닮은 초록색 눈동자를 갖게 되었으니. 이는 곧 태양이 우리의 숲을 보호하며, 우리를 아낀다는 뜻이라고.
하므로 우리는 태양을 사랑하고 숭배하며 모셔야 한다는 그 이야기를.
그 어린 시절엔, 나도 친구들도 태양의 은혜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을, 그 어떠한 조건도 없이 받아들여 주는 사랑이라니.
우리는 태양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 꼬질꼬질한 손으로 흙더미를 파헤쳐 꽃 한 송이를 뿌리째 바치기도 했고, 수면을 빛내는 태양 빛에 절을 올리기도 했다.
우리는 정말로 태양을 사랑했다.
나는 정말로 태양을 사랑했다.
하지만 태양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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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가장 높은 하늘에 오르는 시기, 여름. 우리는 매년 여름에 성인식을 치른다.
성인식 날에는 그 누구도 일하지 않는다. 모두가 마을 중앙에 모여 새롭게 태어날 소년들을 지켜보고 응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 찬란하신 황금빛 태양을 보라. 그는 우리의 어버이이며 우리를 수호하시는 빛이시다.”
갈색투성이인 소년들은 우물에서 길어온 맑은 물로 눈을 씻어내고, 하늘 높이 오른 태양을 바라본다.
눈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도 시선을 피하지 않고, 태양이 받아들여 줄 때까지 계속해 바라본다.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더라도,
이는 마을 사람들의 환호에 묻힌다.
누군가가 피눈물을 흘리더라도,
이는 강렬한 태양 빛에 묻힌다.
누군가가 끝내 쓰러지더라도,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그의 변한 색상만이 들어온다.
찬란한 황금빛 머리카락.
그것이 모두의 눈과 귀를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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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의 차례가 왔을 때, 모두의 눈과 귀를 막을 황금빛은 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고통에 몸부림치며
나의 심장이 쪼아 먹히는 감각을 느끼며
나의 영혼이 불타 잿더미만 남은 절망에 파묻혔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나의 곁에는 누구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붉은 머리카락만이 나를 농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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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은 나를 태양에 대한 모욕이라 부르면서도 나를 내쫓지는 못했다.
나 역시 이 마을의, 여름의 성인식을 치른 소년이었으므로. 태양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서 쫓아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참 치졸하게도 내가 스스로 죽길 바라더라.
나에게 분배되던 모든 음식과 옷가지를 끊고,
내 집마저도 어느샌가 불길에 없어졌다 속이며.
내가 굶어 죽든, 얼어 죽든, 수치에 죽든.
그저 죽기만을 바라더라.
나를 경멸하고 붉은색을 경멸하고
나를 혐오하고 붉은색을 혐오하고
나의 죽음을 바라고 붉은색의 죽음을 바라고
나의 파멸을 바라고 붉은색의 파멸을 바라고
나의 흔적이 남지 않은 자리에 붉은색의 흔적이 남지 않은 자리에
오로지 그들이 믿는 태양의 영광만이 남기를
그들은 바랐다.
그러나 나는 붉은색은 죽지도 파멸하지도 않았기에.
그들은 나를 붉은색을 더욱 배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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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다가오면 태양은 점차 휴식을 취하기에, 마을 사람들도 휴식에 전념했다.
태양이 다음 해에 태어날 아이들을 위해 힘을 비축하듯, 마을 사람들도 다음 해의 성인식을 위해 몸과 마음을 경건히 다스렸다.
원래라면 나도 그들과 함께했을 것이다. 내가 금색 머리카락과 초록색 눈동자를 지녔다면, 그들과 함께 겨울나기를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달라졌으니.
나는 음식도 옷도 심지어는 집조차 마땅치 않은 상태로 겨울을 버텨야 했다.
결국 나는 숲으로 들어갔다.
서툰 솜씨로 동물들을 잡고, 칼에 몇 번이고 피를 보며 동물들을 해체하고, 불씨에 화상을 입으면서도 해체한 고기들을 구워 먹었다.
마을 사람들이 나를 보았다면 야만인이라 불렀을 것이다. 내 저럴 줄 알았다고, 태양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고, 그리 말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추위에 떨며 그들의 집에 갇혀 살았고, 나는 불꽃을 든 채 숲속을 전전하며 살았으니. 그들과 나는 만날 일이 없었다.
겨울이 끝나고 숲에서 나왔을 때, 그들이 경악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야만인이라는 말은 듣지 못했지만, 그래.
그들은 나를 불꽃을 든 괴물이라 불렀던 것 같다.
뭐, 나쁘지 않은 호칭이라고 생각한다.
태양에 대한 모욕보다는 좀 더… 내 생존력에 감탄하는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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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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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지만 내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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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여름. 여름이다. 힘을 비축한 태양이 마을을 축복하는 시기.
여름이 찾아왔다는 것은 성인식이 코앞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내 인생을 숲으로 처박아버린 바로 그 성인식 말이다.
아, 들리는구나. 마을 사람들이 술렁이는 소리가. 기어코 이 자리에 찾아온 불청객을 보며, 또다시 태양을 모욕하는 자가 나올까 두려워하고 분노하는 소리가.
태양을 모욕하는 자라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불꽃을 든 괴물에서 호칭이 다시 돌아왔다. 봄과 여름 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일까. 평화로워서 그런 것일까.
하지만 평화로운 것은 좋은 것이다. 그 누구도 고통받지 않고, 그 누구도 비명을 지르지 않으며, 그 누구도 피눈물 흘리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니까.
그러니까 나는 평화가 좋다.
그러니까 나는 평화를 깨는 이 성인식이 싫다. 누군가가 고통받고, 비명 지르고, 피눈물을 흘림에도 계속되는 성인식이 싫다.
아니, 아니다. 나는 이 성인식이 좋다.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다른 이들이 태양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는 것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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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하고 있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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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인식 날이다. 내가 성인식을 치른 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그때와는 다른 자리에 서 있다. 나는 성인식을 치르는 소년이 아니므로, 그들을 지켜보는 위치에 서 있다.
마을 사람들의 환호에도 묻히지 않는 비명을 듣고,
강렬한 태양 빛에도 묻히지 않는 피눈물을 보고,
황금빛 머리카락에도 숨겨지지 않는 고통을 느낀다.
모두의 눈과 귀가 가려지더라도, 나는 그 모든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하여 도망쳤다. 그 아름답고도 참혹한 광경으로부터, 불청객은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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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화가 좋다.
숲속은 평화롭다.
누군가의 비명이 닿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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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서는 계절감을 느끼기가 쉽다. 나를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집이 없기 때문일까.
덥고 뜨거워지면 여름인 것이고, 춥고 차가워지면 겨울인 것이다. 지금은 조금씩 서늘해지고 있으니 가을쯤 되었을까.
슬슬 겨울나기를 준비할 때이다. 지난겨울과는 달리, 나는 계속해 숲에 머물며 사냥하고 또 장작을 모아두었기에 그리 춥고 굶주린 겨울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마을 사람들도 그럴까?
…아니,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마을 사람들은 나보다 풍족하면 풍족했지, 부족한 삶을 살지는 않을 것이므로.
그러니 나는 그저 나의 생존만을 생각하면 된다. 평화롭게 겨울을 날 계획을 세우기만 하면 된다.
그리 생각했는데 저 멀리 보이는 검은 연기는 대체 무엇일까.
저 방향이라면 분명 마을이 있는 곳이다. 마을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를 일이 있던가?
내가 알기로는 없다. 마을 사람들은 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한겨울에도 최소한으로만 불을 피운 채 지내므로. 저 정도의 연기가 피어오를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 저건 대체… 뭘 위한 연기이지?
마을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겠다고 했으면서도, 검은 연기에서 전해지는 불길함을 외면하지 못하겠다. 외면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하여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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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귀에 도착했을 때,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그 누구의 비명도 들리지 않았다.
나에게 보이는 것은 거대한 불기둥이었고,
나에게 들리는 것은 무언가가 잿더미로 화하는 소리였으며,
나에게 느껴지는 것은 매캐한 따가움이었다.
아니, 그렇지 않다. 희미하지만 사람의 소리가 들렸다. 작게 소곤거리는 소리, 여러 물건에 부딪히며 울리는 소리, 그리고….
그리고?
…이건 사람의 소리가 아니었다. 사람의 소리일 수가 없었다.
사방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속삭임이 메아리친다. 나는 그것에 귀 기울이지 않으려 했으나, 그럴수록 속삭임이 거대해지고 또 거대해져서 나를 잡아먹을 것만 같다. 나를 여러 갈래로 갈라 쪼아먹고 또 쪼아먹으며 잿더미 속에서 농락할 것만 같다.
아니다. 그 무엇도 나를 잡아먹지 않았다. 그래, 내 몸은 멀쩡하다. 하지만, 그렇지만. 저 거대한 부리는 무엇이지? 나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저 거대한 것은 대체 무엇이지?
…무언가 쪼아 먹히는 소리가 들린다. 질척이는 혈액과 끊어지지 않고 길게 늘어지는 근섬유, 그것을 어떻게든 끊어내고 분리하여 삼키는 소리. 세포 하나하나가 박동하며 저항하지만 날카로운 물체로 인해 갈라지고 쪼개어지며 낱낱이 흩어지는 소리. 다시 무언가 액체가 튀는 소리, 액체가 다른 것과 마찰하는 소리,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찢기는 소리, 무언가 삼켜지는 소리, 그리고, 그리고….
눈앞에는 그저 불기둥뿐이다. 살아있는 생물이라고는 나 하나뿐이다. 불기둥이 마치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며 부산스러운 움직임을 보이지만, 저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저 하늘 높은 곳, 불기둥의 끝에서 울리는 소리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버틸 수 없으리란 직감 속에서, 이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떠났다. 다시 숲으로 향했다. 마을의 그 무엇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을 평화로 향했다.
그런 나의 발걸음마다 작고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아라, ■■■■■■여. 그대가 불을 나누지 않기에 내 친히 나섰단다. 어떠하냐. 네 마음에 차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