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글

일상과 같은 어느 성탄절

6,006자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차가운 바람에 천이 팔락이고, 그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는 나 자신.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눈송이가 온 세상을 덮은 채 반짝이고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어제와 같은 날일 터였다. 헌데 아침부터 남의 집 앞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자는 누구란 말인가. 하루의 시작부터 일과가 어그러지는 듯하여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 대협, 아침부터 무슨 일이십니까?”

 

“제가 언제는 용건이 있어 찾아왔던가요. 그저 당신을 보고 싶어 들렀습니다.”

 

잠시 들렀을 뿐이라며 웃는 그의 귀는 빨갛게 부어있었다. 최소한 일각은 이곳에 서 있던 것이리라. 숨 쉬듯 거짓말을 하는 그를 두고 길을 나섰다. 곧바로 나를 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렸고, 또다시 앞을 가로막혔다.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물끄러미 올려다보니, 퍽이나 해맑은 낯으로 엉뚱한 말을 내뱉는 것이었다.

 

“당신은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잠시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자, 그는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듯 말을 이어갔다.

 

“서쪽의 어느 지역에서는 오늘을 신의 아들이 태어난 날이라고 믿는다더군요. 왜 신이 아닌 신의 아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을 믿고 그들이 태어난 날을 기념한다는 것이 특이해요.”

 

그는 생각에 빠진 듯 눈동자를 굴리다가, 이내 입술을 매만지며 실소했다. 무척이나 우스운 말이라는 듯이, 한편으론 생소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며, 강호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을 속삭였다.

 

“우리는…. 당신도 잘 알다시피 힘이 전부죠. 부와 권력조차도 무(武)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세상이니.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는 것일까요? 힘을 신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요?”

 

이상한 논리였다. 그조차도 웃음을 터트리며 말이 헛나왔다고 할 정도로.

 

-

 

이후에는 그저 함께 길을 걸으며 동이 트는 것을 보고, 함께 식사하고, 평소와 같이 강호를 살폈다. 허나 그가 뱉은 이상한 발언은 머릿속에 박혀 떠나지 않았다.

 

신은 믿음으로 존재하는 허상과도 같은 것이다. 믿음이 존재하지 않으면 신 또한 존재할 수 없고, 믿음이 있어야만 신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 전지전능하다고 믿어지는 존재이나 실상은 믿음에 의존하는 무언가. 이를 무엇이라 정의해야 하는가? 그의 말처럼, 전지전능하며 많은 이들이 바라는 힘은 신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하늘에 기도하는 무수한 이들은 힘을 추구해야만 하는 것인가?

 

계속되는 생각을 멈춘 것은 다름 아닌 비명이었다. 더 정확히는, 기쁨에 차 참지 못하고 내지르는 목소리였다.

 

“하 공자, 요즘은 어이하여 오지 않으셔요. 월향이 꽃단장하고 기다린단 말이어요. 공자가 없으니 소녀들 외롭사와요.”

 

기루의 여인들이었다. 하정은 곤란한 표정으로 웃으며 무어라 대꾸하는 듯했다. 그에 여인들은 아쉬워하는 소리를 내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계속해 목소리를 내었다. 이제 그의 표정은 곤란을 넘어 곤혹과 당황이 어리기 시작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조용히 더 멀어졌다. 저 사이에 있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더더욱 내 알 바가 아니었다. 하정이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외치는 것도 같았지만, 그래,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모두 자업자득이지 않은가?

 

한참을 걷다 보니 뒤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은 묵직하지만 가볍게 다음 걸음을 내딛는 소리. 하정이었다.

 

겨우 그들에게서 벗어난 그는 흐트러진 매무새로 나를 붙잡고는 숨을 골랐다. 그의 무예가 뛰어남을 알고 있는 내가 보기엔 그저 가식이었으나, 굳이 언급하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호흡이 안정된 후, 그는 고개를 들며 변명을 시도했다. 최근에는 기루 근처에도 가지 않았고 아주 오래전에나 술을 마시러 갔다, 그대를 만난 뒤로는 단 한 번도 발걸음한 적이 없다.

 

나는 문득 우스워졌다. 처음 만났을 때도 기루에서 잡기 놀이를 하던 사람이, 그것을 모두 보아온 사람에게 하는 변명이란. 그 가벼움을 알기에 적당히 흘려들으며 매무새를 정돈해주었고, 내가 듣고 있지 않음을 눈치챈 그도 한숨을 내쉬며 옷자락을 놔주었다.

 

아, 옷자락이 여지껏 붙잡혀 있었음을 모르고 있었다. 누군가와의 접촉은 언제나 꺼려지건만, 어찌하여 하정과의 접촉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가? 의아함을 품으며 옷자락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그는 흠칫 놀라며 사과를 전해왔다. 얼굴을 가린 천으로 인해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을 것임이 분명한데, 그는 언제나 나의 시선을 눈치채는 듯싶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느라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그는 조금 불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재차 사과했다. '고작해야' 옷자락일 뿐인데 고개까지 숙여가며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그.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그가 때때로 전해오는 진심 어린 말들은 무거웠다. 그렇기에, 내가 혐오하는 인간상일지라도 그를 혐오할 수는 없는 것이리라.

 

나는 괜찮다는 답을 건네며 그를 일으켜 세우곤 다시 길을 걸었다. 그는 안심한 표정으로 내 옆을 함께 걸어갔다.

 

-

 

언제부터였던가? 그가 나의 일상에 속하게 된 것은. 어느 날부턴가 자연스레 함께하고 있었다. 먼저 다가와 말을 걸으니 별다른 도리없이 대꾸해주고, 식사를 하고 있으면 앞자리에 앉아 같이 수저를 들고, 길을 걷고 있어도 어디에선가 나타나 주변을 맴돌고. 아, 나는 어찌하여 경계하지 않았던가. 누가 보아도 수상할지언데.

 

가만히 탄식하며 과거를 돌이키고 있으니, 하정은 무언가를 나에게 건네었다. 아, 이를 또 자연스레 받아들다니, 애석할 지경이었다. 또다시 탄식하며 그가 건넨 물건을 바라보았다. 토끼 모양의 과자였다. 과자라니, 그와도 나와도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닌가? 그것도 무려 토끼 모양의.

 

의아하게 쳐다보자 그는 살풋 웃으며 눈을 반짝였다.…대체 무엇을 기대하고 있단 말인가?

 

“방금의 무례에 대한 사죄의 표시에요. 간식을 즐기지 않는 것은 알고 있지만, 가끔은 괜찮지 않나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게다가 사죄의 의미로 준 것이라면 먹지 않는 것도 무례일 터였다.

 

천 자락을 살짝 걷어 한 입 베어 무니, 지독히도 단맛이 입에 맴돌았다. 그는 어째서인지 무척이나 기쁜 낯을 하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소동물을 보는 듯한…. 소동물? 지금 이 자는 나를 토끼처럼 취급하는 것인가?

 

하정은 급격한 혼란에 빠져 과자를 든 채로 고민하는 나를 보더니, 이내 큰 웃음을 터트리며 토끼를 가져갔다. 아니, 과자를. 그와 함께 있으면 이상해지는 것 같다.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생각이 들게 된다. 처음부터 어울려서는 안 되었는데. 통탄할 노릇이었다.

 

그는 그 토끼 모양의 과자를 입안에 털어놓고는 또다시 웃었다.

 

“확실히, 그대가 먹기에는 무척 달군요.”

 

...과자 때문만은 아니었으나, 지금껏 생각한 바를 언급하면 놀림당할 것이 분명했으므로 침묵을 지켰다.

 

-

 

그는 즐겁고 나는 혼란스럽던 하루도 저물어갔다. 해가 진 뒤에도 자연스럽게 저녁을 함께하다가, 문득 아침의 일이 떠올랐다. 신이 존재하느냐는 질문과 그 질문을 할 때의 표정까지도, 전부.

 

술을 권하는 그에게 일상처럼 거절의 말을 전하려다, 생각을 바꾸어 비일상적으로 수락했다. 오늘 하루는 시작부터 비일상적이었으니 마무리가 비일상적이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일종의 충동이었다. 내가 술잔을 들자 그는 무척이나 의아한 표정으로 술을 따르던 행동을 멈췄다. 목석같은 분이 웬일이냐며 놀리는 그를 외면하며 술을 한 모금 머금고, 한숨과도 같은 숨을 내쉰 뒤 눈을 오랫동안 감았다가 떴다.

 

“하 대협. 아침의 그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속삭이듯 나온 말에 하정은 또다시 굳었다. 나를 놀리던 것도 멈추고, 술을 마시던 것도 멈춘 채로. 한참의 침묵 끝에 그는 술잔을 들어 얼굴을 가리며 답하고 싶지 않다는 듯 시선을 회피했다. 그의 실소하던 표정이 마음에 걸려 더 캐묻고 싶었으나,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아침에 끊겼던 생각을 이어갔다. 이번에는 생각이 아닌 말로, 입 밖으로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힘은 분명 전지전능한 듯 보이고, 많은 이들이 바라고 믿는 가치입니다. 그런 면에서 신이라 칭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는 의외로 나의 말을 끊지 않았다. 듣는 듯 마는 듯, 이 문장이 혼잣말이 될 수 있도록 술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잠시간 그를 보며 고민하다가, 이 정도는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유는 없었다. 그저 감이었다.

 

“허나 힘은 일종의 욕구입니다. 신앙심이라는 믿음과는 다르게, 힘에 대한 마음은 욕구이며 동시에 불안감입니다. 없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그 누구도 힘을 기념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를 증명합니다.”

 

나 또한 술을 머금으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가 어찌해서 그런 질문을 한 것인지, 어떠한 답을 원하는 것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에게 하고픈 말이 있었다. 실소하면서도 무언가 간절해 보이던 표정이 마음에 걸려서, 마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아이를 보는 것만 같아서. 아마 그래서였을 터이다.

 

“힘을 가진 자들은 과시하며 힘을 더 얻고자 하고, 가지지 못한 자들은 살기 위해 그들의 밑에서 아부합니다. 결코 충족되지 않을 욕구는 신이 될 수 없습니다.”

 

술에 취한 것일까? 혹은 나의 눈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웃음기를 머금고 있던 눈동자가 반짝이더니, 이윽고 하나둘씩 그 투명함이 얼굴에 번져나갔다.

 

“허니 하 대협, 당신의 질문은 틀렸습니다. 전제부터가 잘못된 것입니다. 신이 존재하려면 욕구가 아닌 믿음이 필요합니다.”

 

애써 수습하려 했으나 얼굴은 투명함에 얼룩졌고, 그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급히 옷자락에 얼굴을 묻었으나 떨림은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커져만 갔다.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으나 어쩐지 알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흐느끼는 그를 두고 혼잣말을 이어갔다.

 

“자신의 믿음을 정의라고 착각하며 힘을 그릇된 방향으로 사용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방향에는 수많은 사람이 존재하고, 의지와는 상관없이 휘둘립니다. 그 결과 누군가를 해칠 수도 있고, 자신이 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강호인은 그런 삶을 살아갑니다. 저 또한 예외가 아니었고, 하 대협 또한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합니다. 허나 중요한 것은 현재입니다. 어떠한 과거를 지나왔든, 어떠한 어둠을 품고 있든. 현재에 존재한다면 현재에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설사 과거의 인연이 끊겼을지라도 말입니다.”

 

어쭙잖은 위로였다. 누군가를 잃었을 그에게, 단 한 번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한 아이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과거에 얽매이더라도 현재를 살아가야만 한다.’ 그것이 나를 살게 하는 문장이며, 이제는 그를 살게 하고픈 나의 마음이었다.

 

그의 가벼운 모습은 내가 혐오하는 인간상과 같으나, 그를 혐오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거짓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얽매여 현재를 거짓으로 꾸며낸 사람. 내가 지나온 과거는 그와 같았고, 그렇기에 같은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했다. 더는 아파하지 않기를 바랐다.

 

진정으로 그러했다.

 

-

 

“진비연, 그대, 취하셨군요.”

 

어느샌가 말끔한 모습으로 일어난 하정은 평소와 같이 웃어 보였다. 다시 나를 놀리려는 어투로 가볍게, 그러나 아직 물기가 남아있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글쎄, 취한 것일까. 취했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으나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을 담은 말이었다.

 

“자자, 취객께서는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어이쿠, 몸도 휘청거리시네.”

 

능청맞고 장난스러운 말들. 비일상 속 일상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던가? 허락한 적이 없을 터인데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넘기고 말았다. 그래, 하루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

 

몸을 잘 가누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하정한테 업혀있었다. 어쩐지 따듯하다 싶었다. 그래, 따듯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타인의 온기였고, 어쩌면 난생처음으로 꺼림칙하지 않던 접촉이었다.

 

“집에 도착했는데 내리지 않으실 건가요? 물론 저야 그대와의 접촉은 언제든 환영이지만요.”

 

“수고를 끼쳐 죄송합니다. 그리고….”

 

취한 탓이었다. 이성이 마비되었기에, 그가 약한 면모를 보였기에. 이 모든 것이 비일상적이었던 탓이다. 나의 말도, 행동도, 그리고 감정도.

 

“…이름을 허락한 적은 없습니다, 하무의.”

 

처음으로 그를 부른 순간이었다. 대협이 아닌 ‘자’로.

 

기쁜 듯 웃는 그를 뒤로 한 채 집으로 들어갔다. 한참이 지나서야 떠나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그제야 알게 되었다.

 

-

 

아, 언제부터였던가. 그를 마음에 들이게 된 것은. 정말 통탄할 노릇이었다.